일반 한국샬렘 주간 영성편지 - 내 증인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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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국샬렘 댓글 0건 조회 1,391회 작성일 20-05-25 22:33본문
[ 내 증인이 될 것이다 ]
신동렬 목사 (대구 동인교회)
1.
서른 한 번째 환자가 대구에서 확인되던 날, 아버지는 돌아가셨다. 지난해 12월에 이어 두 번째로 119 구급대의 도움을 받아 응급실에 모신 지 나흘 만이었다. 주일의 일정을 모두 마치고, 아내와 교대하여, 아버님이 누우신 침대 옆에 앉았다. 지상에서 같이 지낼 마지막 밤이 될 줄도 모르고 깜박깜박 졸다가 아버지와 눈을 맞춘다. 잠시 정신이 드셨는지 한 말씀 하신다. “인생이 허망하지 않다. 최선을 다해 살았고, 아들이 훌륭한 목사가 되었으니 인생이 허망하지 않다.” 죄송하고 부끄러웠다.
2.
연명치료에 관한 결정이 내려진 상태에서, 일반병실로 옮기고 몇 시간이 지나지 않아 동산병원 응급실은 폐쇄되었다. 경북대 장례식장에 빈소를 정한 직후 그 병원의 응급실도 폐쇄되었다. 장례식장 사무실에는 조문이 가능한지 묻는 전화가 빗발쳤고, 부고와 함께 조문을 사양한다는 안내 문자를 보내야 했다. 아버지의 마지막 숨을 지키고 쓰러질 듯 울고 있는 동생을 달래야 했고, 어머니를 모셔 와야 했고, 가족끼리 진행한 모든 예식을 직접 집례 해야 했으며, 운구위원마저 부족해 장의차 기사의 도움을 받아야 했다.
3.
구청 직원에게 아버지의 사망을 신고한 후 가장 힘든 시간이 왔다. 어머니의 손을 잡는 순간, 화장장에서도 잘 참았던 울음이 결국 터져 나오고야 말았다. 아파트 관리사무소와 연금공단과 몇 군데 은행을 방문하여 아버지의 사망을 확인시키는 과정도 쉽지 않았다. 무엇보다 아버지의 마지막 말씀이 계속 머리에서 맴돌았다. ‘최선을 다하는 삶과 훌륭한 목사’라니! 어떻게 하라고! 닮고 싶지 않았으나, 유품을 정리하면서 너무나 닮았다는 것을 발견할 때마다 마음이 요동친다. 코로나 이후 나의 일상은 아버지 부재의 시간들로 흘러간다. 하지만 살아 계실 때보다 더 많이, 더 자주 말씀하신다. 최선을 다하는 삶과 훌륭한 목사에 대하여. 이제야 비로소 그분의 아들이 되어 간다는 느낌이 든다. 참으로 고민이다. 허망하지 않았다는 아버지 인생의 사후 알리바이를 어떻게 만들어가야 할지.
4.
부활하신 주님은 승천하시기 전 제자들에게 마지막 말씀을 남기셨다. ‘내 증인이 될 것이다.’ 제자들은 주님의 마지막 말씀을 어떤 의미로 받아들였을까? 사실 제자들은 다른 기대를 품고 있었다. “주님, 주님께서 이스라엘에게 나라를 되찾아 주실 때가 바로 지금입니까?” 제자들은 조급했고, 이스라엘 왕국의 부활을 기대했으며, 무엇보다 부활하신 주님이 직접 그 왕국을 다스리며 이끌어 나갈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주님은 전혀 다른 대답을 들려 주셨다. “때나 시기는 아버지께서 아버지의 권한으로 정하신 것이니, 너희가 알 바가 아니다. 그러나 성령이 너희에게 내리시면, 너희는 능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에서, 그리고 마침내 땅 끝에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될 것이다.” (행 1:6-9)
5.
복음서에서 제자들은 항상 꾸지람을 듣는다. 그들은 믿음이 없는 사람들이거나, 깨닫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심지어 사탄이 된다. 큰 소리 치던 제자는 주님을 모른다고 세 번이나 부정하였고, 고난과 십자가의 의미도 모른 채 물고기 잡으러 고향으로 돌아가 버렸다. 여러 차례 부활에 대해 말씀하셨으나, 부활하신 그 분을 만나기 전까지 아무런 기대도 없었던 사람들이다. 그들의 기대는 늘 주님과 어긋난다.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후에도 그들은 여전히 주님의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 그런 제자들에게 주님의 마지막 말씀은 어떤 의미였을까? 주님의 나라는 이제 막 시작되었을 뿐이고, 그 나라는 민족주의를 넘어 온 인류를 향해 나아가야 하며, 무엇보다 지상에 남겨진 그들 자신이 그 사역을 감당해야 한다는 대답을 들었을 때, 그리고 그 마지막 말씀을 남기시고 구름에 싸여 들려 올라가시는 주님을 보았을 때 과연 어떤 심정이었을까?
6.
주님이 떠나신 후에 비로소 제자들은 제자가 되고 사도가 된다. 그들은, 우리는, 왜 떠나고 난 후에야 깨닫는 어리석음을 반복할까? 하지만 떠난 후에 찾아오는 깨달음을 통해 더 큰 울림이 일어나고 사람과 역사가 변화된다. 갑자기 떠나버린 지도자가 품었던 희망은 촛불혁명으로 되살아나 새 시대를 열어 가고, 아버지가 떠나며 남기신 말씀은 허물 많은 아들의 남은 인생을 밀고 간다. 광주에서 봉하에서, 앞서 떠난 이들을 기억하며 그 의미를 되새기는 5월을 보내며, 제자들에게 지상의 사역을 남기고 하늘로 떠나신 주님의 말씀을 듣는다. “내 증인이 될 것이다”
신동렬 목사 (대구 동인교회)
1.
서른 한 번째 환자가 대구에서 확인되던 날, 아버지는 돌아가셨다. 지난해 12월에 이어 두 번째로 119 구급대의 도움을 받아 응급실에 모신 지 나흘 만이었다. 주일의 일정을 모두 마치고, 아내와 교대하여, 아버님이 누우신 침대 옆에 앉았다. 지상에서 같이 지낼 마지막 밤이 될 줄도 모르고 깜박깜박 졸다가 아버지와 눈을 맞춘다. 잠시 정신이 드셨는지 한 말씀 하신다. “인생이 허망하지 않다. 최선을 다해 살았고, 아들이 훌륭한 목사가 되었으니 인생이 허망하지 않다.” 죄송하고 부끄러웠다.
2.
연명치료에 관한 결정이 내려진 상태에서, 일반병실로 옮기고 몇 시간이 지나지 않아 동산병원 응급실은 폐쇄되었다. 경북대 장례식장에 빈소를 정한 직후 그 병원의 응급실도 폐쇄되었다. 장례식장 사무실에는 조문이 가능한지 묻는 전화가 빗발쳤고, 부고와 함께 조문을 사양한다는 안내 문자를 보내야 했다. 아버지의 마지막 숨을 지키고 쓰러질 듯 울고 있는 동생을 달래야 했고, 어머니를 모셔 와야 했고, 가족끼리 진행한 모든 예식을 직접 집례 해야 했으며, 운구위원마저 부족해 장의차 기사의 도움을 받아야 했다.
3.
구청 직원에게 아버지의 사망을 신고한 후 가장 힘든 시간이 왔다. 어머니의 손을 잡는 순간, 화장장에서도 잘 참았던 울음이 결국 터져 나오고야 말았다. 아파트 관리사무소와 연금공단과 몇 군데 은행을 방문하여 아버지의 사망을 확인시키는 과정도 쉽지 않았다. 무엇보다 아버지의 마지막 말씀이 계속 머리에서 맴돌았다. ‘최선을 다하는 삶과 훌륭한 목사’라니! 어떻게 하라고! 닮고 싶지 않았으나, 유품을 정리하면서 너무나 닮았다는 것을 발견할 때마다 마음이 요동친다. 코로나 이후 나의 일상은 아버지 부재의 시간들로 흘러간다. 하지만 살아 계실 때보다 더 많이, 더 자주 말씀하신다. 최선을 다하는 삶과 훌륭한 목사에 대하여. 이제야 비로소 그분의 아들이 되어 간다는 느낌이 든다. 참으로 고민이다. 허망하지 않았다는 아버지 인생의 사후 알리바이를 어떻게 만들어가야 할지.
4.
부활하신 주님은 승천하시기 전 제자들에게 마지막 말씀을 남기셨다. ‘내 증인이 될 것이다.’ 제자들은 주님의 마지막 말씀을 어떤 의미로 받아들였을까? 사실 제자들은 다른 기대를 품고 있었다. “주님, 주님께서 이스라엘에게 나라를 되찾아 주실 때가 바로 지금입니까?” 제자들은 조급했고, 이스라엘 왕국의 부활을 기대했으며, 무엇보다 부활하신 주님이 직접 그 왕국을 다스리며 이끌어 나갈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주님은 전혀 다른 대답을 들려 주셨다. “때나 시기는 아버지께서 아버지의 권한으로 정하신 것이니, 너희가 알 바가 아니다. 그러나 성령이 너희에게 내리시면, 너희는 능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에서, 그리고 마침내 땅 끝에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될 것이다.” (행 1:6-9)
5.
복음서에서 제자들은 항상 꾸지람을 듣는다. 그들은 믿음이 없는 사람들이거나, 깨닫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심지어 사탄이 된다. 큰 소리 치던 제자는 주님을 모른다고 세 번이나 부정하였고, 고난과 십자가의 의미도 모른 채 물고기 잡으러 고향으로 돌아가 버렸다. 여러 차례 부활에 대해 말씀하셨으나, 부활하신 그 분을 만나기 전까지 아무런 기대도 없었던 사람들이다. 그들의 기대는 늘 주님과 어긋난다.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후에도 그들은 여전히 주님의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 그런 제자들에게 주님의 마지막 말씀은 어떤 의미였을까? 주님의 나라는 이제 막 시작되었을 뿐이고, 그 나라는 민족주의를 넘어 온 인류를 향해 나아가야 하며, 무엇보다 지상에 남겨진 그들 자신이 그 사역을 감당해야 한다는 대답을 들었을 때, 그리고 그 마지막 말씀을 남기시고 구름에 싸여 들려 올라가시는 주님을 보았을 때 과연 어떤 심정이었을까?
6.
주님이 떠나신 후에 비로소 제자들은 제자가 되고 사도가 된다. 그들은, 우리는, 왜 떠나고 난 후에야 깨닫는 어리석음을 반복할까? 하지만 떠난 후에 찾아오는 깨달음을 통해 더 큰 울림이 일어나고 사람과 역사가 변화된다. 갑자기 떠나버린 지도자가 품었던 희망은 촛불혁명으로 되살아나 새 시대를 열어 가고, 아버지가 떠나며 남기신 말씀은 허물 많은 아들의 남은 인생을 밀고 간다. 광주에서 봉하에서, 앞서 떠난 이들을 기억하며 그 의미를 되새기는 5월을 보내며, 제자들에게 지상의 사역을 남기고 하늘로 떠나신 주님의 말씀을 듣는다. “내 증인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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