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 9월 첫째 주간 샬렘 주간 영성편지 - ‘고요하고 잠잠하여라’(막 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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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국샬렘 댓글 0건 조회 2,219회 작성일 20-08-31 11:03본문
‘고요하고 잠잠하여라’(막 4:38)
‘왜들 무서워하느냐? 아직도 믿음이 없느냐?’(막 4:39)
거센 바람(광풍)이 일어나, 파도가 배 안으로 들어와, 물이 배에 거의 가득차자 제자들은 ‘우리가 다 죽게 되었는데, 아무렇지도 않으십니까“’하며 예수를 깨웠다.
지난 1월말 이후 일어난 유례없는 코로나 19바이러스 팬데믹으로 인한 두려움, 또한 지구환경 변화로 인한 역대 최장기 장마와 태풍으로 인한 막대한 피해 상황들, 믿거나 말거나 온갖 거짓 뉴스들이 떠돌아 다니는 혼란스런 상황, 그 중에서도 기독교인으로서 피할 수도 외면할 수도 없는 전광훈씨와 그를 둘러싼 사람들과 교회의 무작스런 행태를 보며, 제자들의 두렵고 공포스럽기 조차한 그 상황을 떠 올린다.
하지만 그들은 주님이 같은 배 안에 있음을 뒤늦게 알고 주님을 깨운다. ‘우리가 죽게 되었는데 아무렇지도 않으십니까?’ 정말 예수님은 아무렇지도 않으셨기에 잠을 주무실 수도 있었겠다. 죽을 정도의 공포와 두려움과 패닉 상태에 빠진 제자들과 아무렇지도 않은 듯 잠을 주무시고 있는 예수의 상태! 같은 상황에서 이렇게 다른 상태일 수 있을까?
예수께서 바람을 꾸짖으시고, 들끓는 파도를 향해 ‘고요하고 잠잠해져라’하고 한 말씀 하시니 곧 바람이 그치고 아주 고요해졌다.
지난 8월 중순에, 코로나 19로 미루어왔던 침묵피정을 하였다. 외적침묵은 피정집의 상황으로 이런저런 장치가 마련되었기에(전화, TV, 책 금지 등) 그런대로 가능하지만, 내적 침묵 곧 내적으로 고요해지는 데에는 통상 2~3일(그것도 계속 기도생활을 꾸준히 해 온 경우)은 걸린다. 삶 속에서 겪었던 혼란스러운 일들, 무질서하게 올라오는 여러 생각들이 어느만큼 잠잠해지면서 주위의 풍경들과 소리들이 눈에 들어오고 귀에 들린다.
보고 듣고 하는 능동 상태에서 보이고 들리는 수동 상태를 느낀다고 할까? 그러면서 말씀을 통해 들려주시는 그 어떤 느낌이나 소리도 감지하게 된다. 사실 내적침묵 상태가 되면서 기도에 들어간다.
공동체에 살면서 꾸준히 기도시간을 갖지만, 때로는 그 어떤 기운에 의해 휘몰려가는 것을 느낀다. 서로 다른 기질과 환경에서 자란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이기에 일어날 일들은 다 일어난다. 일상의 삶에서는 목소리 크고 끝까지 이야기 하는 사람을 피하고 외면하고 무시하게 된다. 특히 올해는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공동체에서 운영하고 있는 노인요양원으로 인해 더 조심하고 긴장하고, 외부활동도 제한되고 그리고 한 공간에서 함께 있는 시간들이 많다보니 작은 갈등과 부딪침들이 더 보여진다.
큰 일이 일어나면 적을 분명히 알게 된다. 사회를 향해서 크게 분노하지만 실제로 자신이나 주변 가까이에서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것은 알아차리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마음을 고요하게 하면, 주위의 상황에 점점 예민해지고, 작은 것도 감지하게 된다.
영적인 상태는 부드럽고 세밀해지고 그래서 다루는 범위도 넓고 깊어진다. 그에 비해 육적인 상태는 거칠고 폭풍이 휘몰아치는 것처럼 황량하다. 때로 속임수를 쓰기도 하지만, 육적인 것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는다면 영적인 상태는 보여지고 들려지는 상태이다.
‘기도하지 않으면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예수님의 말씀처럼, 마음이 고요하고 잠잠한 가운데, 보여지고 들려주시는 것들 안에서 하나님의 뜻을 알아듣게 되면, 이 혼란스럽고 두렵고 공포스런 상황을 잠잠케 하시는 분의 일을 보게 될 것이다.
- 노종숙 언님(한국디아코니아자매회) -
‘왜들 무서워하느냐? 아직도 믿음이 없느냐?’(막 4:39)
거센 바람(광풍)이 일어나, 파도가 배 안으로 들어와, 물이 배에 거의 가득차자 제자들은 ‘우리가 다 죽게 되었는데, 아무렇지도 않으십니까“’하며 예수를 깨웠다.
지난 1월말 이후 일어난 유례없는 코로나 19바이러스 팬데믹으로 인한 두려움, 또한 지구환경 변화로 인한 역대 최장기 장마와 태풍으로 인한 막대한 피해 상황들, 믿거나 말거나 온갖 거짓 뉴스들이 떠돌아 다니는 혼란스런 상황, 그 중에서도 기독교인으로서 피할 수도 외면할 수도 없는 전광훈씨와 그를 둘러싼 사람들과 교회의 무작스런 행태를 보며, 제자들의 두렵고 공포스럽기 조차한 그 상황을 떠 올린다.
하지만 그들은 주님이 같은 배 안에 있음을 뒤늦게 알고 주님을 깨운다. ‘우리가 죽게 되었는데 아무렇지도 않으십니까?’ 정말 예수님은 아무렇지도 않으셨기에 잠을 주무실 수도 있었겠다. 죽을 정도의 공포와 두려움과 패닉 상태에 빠진 제자들과 아무렇지도 않은 듯 잠을 주무시고 있는 예수의 상태! 같은 상황에서 이렇게 다른 상태일 수 있을까?
예수께서 바람을 꾸짖으시고, 들끓는 파도를 향해 ‘고요하고 잠잠해져라’하고 한 말씀 하시니 곧 바람이 그치고 아주 고요해졌다.
지난 8월 중순에, 코로나 19로 미루어왔던 침묵피정을 하였다. 외적침묵은 피정집의 상황으로 이런저런 장치가 마련되었기에(전화, TV, 책 금지 등) 그런대로 가능하지만, 내적 침묵 곧 내적으로 고요해지는 데에는 통상 2~3일(그것도 계속 기도생활을 꾸준히 해 온 경우)은 걸린다. 삶 속에서 겪었던 혼란스러운 일들, 무질서하게 올라오는 여러 생각들이 어느만큼 잠잠해지면서 주위의 풍경들과 소리들이 눈에 들어오고 귀에 들린다.
보고 듣고 하는 능동 상태에서 보이고 들리는 수동 상태를 느낀다고 할까? 그러면서 말씀을 통해 들려주시는 그 어떤 느낌이나 소리도 감지하게 된다. 사실 내적침묵 상태가 되면서 기도에 들어간다.
공동체에 살면서 꾸준히 기도시간을 갖지만, 때로는 그 어떤 기운에 의해 휘몰려가는 것을 느낀다. 서로 다른 기질과 환경에서 자란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이기에 일어날 일들은 다 일어난다. 일상의 삶에서는 목소리 크고 끝까지 이야기 하는 사람을 피하고 외면하고 무시하게 된다. 특히 올해는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공동체에서 운영하고 있는 노인요양원으로 인해 더 조심하고 긴장하고, 외부활동도 제한되고 그리고 한 공간에서 함께 있는 시간들이 많다보니 작은 갈등과 부딪침들이 더 보여진다.
큰 일이 일어나면 적을 분명히 알게 된다. 사회를 향해서 크게 분노하지만 실제로 자신이나 주변 가까이에서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것은 알아차리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마음을 고요하게 하면, 주위의 상황에 점점 예민해지고, 작은 것도 감지하게 된다.
영적인 상태는 부드럽고 세밀해지고 그래서 다루는 범위도 넓고 깊어진다. 그에 비해 육적인 상태는 거칠고 폭풍이 휘몰아치는 것처럼 황량하다. 때로 속임수를 쓰기도 하지만, 육적인 것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는다면 영적인 상태는 보여지고 들려지는 상태이다.
‘기도하지 않으면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예수님의 말씀처럼, 마음이 고요하고 잠잠한 가운데, 보여지고 들려주시는 것들 안에서 하나님의 뜻을 알아듣게 되면, 이 혼란스럽고 두렵고 공포스런 상황을 잠잠케 하시는 분의 일을 보게 될 것이다.
- 노종숙 언님(한국디아코니아자매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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