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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하는삶) 한마음으로 드리는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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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국샬렘 댓글 0건 조회 485회 작성일 23-03-22 2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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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생활에서 의지를 길들이는 문제는 우리가 기도를 통하여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여정에서 핵심적인 문제이며, 거룩함에 이르는 과정의 중심이고, 참 자아에 이르는 열쇠입니다. 이것이야말로 기도의 궁극적 목적입니다. 왜냐하면 기도는 그 자체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그리스도를 닮아가고, 참 자아와 거룩한 사람으로 변형되는 것을 돕기 위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기도를 통하여 거룩함에 이르는 길은 힘들고도 단순합니다. 역설적이게도 그 길이 힘든 이유와 단순한 이유는 같습니다. 먼저 그것이 힘든 이유는 매우 단순하기 때문입니다. 단순한 이유는 한마음을 요구하기 때문인데, 그것은 한마음(singleness), 또는 깨끗한 마음(purity of heart 마태 5:8)을 의미합니다. 성서에서 마음(heart)은 감정이 아니라 의지를 의미하는데 한마음 혹은 깨끗한 마음은 오직 하나를 의지하고 사랑하는 것입니다. 키에르케고르Søren Kierkegaard는 그 하나가 바로 하느님이며, 하느님은 선하시다고 이야기하였습니다. 그런 점에서 거룩함에 이르는 길을 이해하는 일은 매우 쉽습니다. 그것은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정신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마태 22:38)는 첫째 계명에 복종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해하기 쉬운 이 단순함을 실천하는 일은 결코 쉽지가 않습니다. 거룩함에 이르는 길이 힘들고 어려운 것은 그 길이 우리의 단순한 마음, 달리 말하면 우리의 전심(全心)을 요구하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모든 선함의 근원이신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온전한 사랑을 받을 만한 분이라는 것을 이해하는 것은 쉽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전심으로 하느님을 사랑하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단순함으로의 여정은 어떤 점에서 마치 다이어트를 하는 여정과 같습니다. 우리는 많은 경우 영적으로 너무 비만인 상태에 있습니다. 주님께서 예언자들 가운데 가장 큰 예언자라고 하신 세례 요한의 고백처럼 “그분은 더욱 커지셔야 하고 나는 작아져야”(요한 3:30)합니다. 우리는 하느님께서 우리를 채우실 수 있도록 우리를 비워야 하는데, 우리의 내면은 자신으로 가득하여 하느님께서 오실 자리를 마련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하느님만이 선한 것으로 우리의 굶주림을 채우실 수 있습니다. “배고픈 사람은 좋은 것으로 배불리시고 부요한 사람은 빈손으로 돌려보내시는”(루가 1:53) 하느님만이 우리의 영적인 비만을 가볍게 하실 수 있습니다. 빈 방이 없어서 주님을 맞이할 수 없었던 베들레헴처럼 하느님은 자신으로 가득한 사람에게 당신의 사랑을 채워주실 수 없습니다.

혹시 자신이 영적으로 너무 비만해 있다고 느끼신 적이 있습니까? 그렇다면 다이어트를 시작하십시오. 혹시 당신 자신이 너무 부요하다고 느끼신 적이 있습니까? 그렇다면 당신이 가진 것을 비우는 일을 시작하십시오. 혹시 스스로 훌륭한 군인이 되려고 너무 무리를 하고 있다고 느끼신 적이 있습니까? 그렇다면 기드온처럼 당신의 짐들을 덜어 내십시오.(판관 7) 하느님의 사랑을 받기 위해 우리는 자신을 비워내야 합니다.

자신을 비운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해 17세기 가르멜 수도자였던 부활의 로렌스 형제 St. Brother Lawrence 다음과 같이 대답합니다.

“우리의 성화 聖化는 우리가 하는 일이 달라질 때가 아니라 우리가 평소에 자신을 위해 하던 일을 하느님을 위해 할 때 일어난다. 많은 사람들이 목표와 수단을 혼동한 나머지 인간적인 존경을 얻을 만한 특정한 일들에만 집착하여 제대로 해내지도 못하는 것은 안쓰러운 일이다.”(하느님의 임재연습, 네 번째 대화 中에서, 가톨릭 출판사)

거룩함으로 향하는 여정에서 우리 모두가 변화시켜야 할 것은 우리의 마음(Heart), 우리의 갈망, 우리의 사랑, 우리의 의향입니다. 우리는 하느님을 위해 모든 것을 하려는 마음과 사랑과 의향이 중요합니다. 만일 당신이 거룩함에 이르기 위하여 지금 하던 일을 멈추고, 다른 일을 하여야만 한다는 강박에 시달리고 있다면, 한 번쯤 다시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는 매일 아침과 저녁에 드리는 기도시간에 기도할 수 있듯이 지금 우리가 하는 일을 통하여, 우리의 기쁨과 고통을 통하여 하느님께 우리를 드릴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는 단순함의 가장 훌륭한 모범이었습니다. 그녀의 단순함은 "이 몸은 주님의 종입니다. 지금 말씀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루가 1:38) 라는 한 그녀의 한 마디 고백 속에 응축되어 있습니다. 마리아가 ‘말씀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라고 응답했을 때, 하느님께서는 마리아의 몸을 통하여 스스로 사람이 되시는 위대한 기적을 행하실 수 있었습니다. 하느님은 우리도 마리아처럼 말할 수 있기를 바라십니다. 그렇게 고백할 때, 하느님은 죄인을 거룩한 사람으로 변화시키는 위대한 일을 우리 안에서 행하실 수 있습니다. 마리아가 하느님의 말씀에 온전히 순종하였을 때, 마리아에게는 기적을 일으키시는 하느님을 방해할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우리 내면에는 하느님을 향한 순종의 갈망과 함께 늘 불순종의 죄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마리아처럼 단순해지는 일은 한순간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삶의 긴 여정을 통하여 이루어지는 일입니다. 그리고 여기서 우리가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단순함과 온전함으로의 부르심은 소수의 영적 엘리트들만을 위한 부르심이 아니라 모든 그리스도인들을 향한 부르심이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면 좋고, 안 해도 괜찮은 선택사항이 아니라 우리가 하느님나라에 들어가기 위한 전제조건이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은 절충주의자가 아니십니다. 하느님은 완전한 사랑이십니다. 하느님 나라가 아니면 남는 것은 지옥입니다. 어떤 사람은 그 길을 좀 더 쉽게, 좀 더 빠르게 가고 있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고, 어떤 사람은 너무 느리고 어렵게 가는 것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하느님께 그것은 그리 중요한 일이 아닙니다. 분명하고 중요한 진실은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그 길을 걷고 계시다는 진실입니다. 우리는 하늘 아버지께서 온전하신 것처럼 온전해져야 합니다.(마태 5:48) 이것은 사람의 법령이 아니라 하느님의 법령입니다. 때문에 여기에 협상이란 없습니다. 이 비타협적인 명령은 변치 않는 하느님의 본성에 기인합니다. 하느님은 완전한 사랑이시며 완전하신 사랑은 완전히 사랑받는 존재를 요청합니다. 오직 불완전한 사랑만이 부분적이고 깨어진 사랑에 만족해합니다. 완전한 사랑은 사랑받는 존재를 전부로, 하나로 대합니다. 완전한 사랑만이 사랑받는 사람을 압니다. 왜냐하면 그 사랑만이 사랑받는 사람의 깊은 마음속으로 들어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완전한 사랑에는 이기심이 자리할 수 없습니다. 그 사랑은 완전히 이타적입니다. 그리고 이 완전한 사랑은 우리를 위한 것이지 하느님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하느님은 비록 우리가 아직 그것을 모르고 있다 할지라도 우리에게 과정이 필요하다는 것을 아시며, 그 과정을 우리가 걷기를 바라십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하느님의 양식으로 우리를 채울 수 있도록 우리를 비우는 그곳에서 우리의 비만을 불태울 것입니다. 
       
 기름지고 맛있는 것 배불리 먹은 듯 내 입술 기쁘고 내 입이 흥겨워 당신을 찬양합니다.
                                시편 63:5

이렇듯이 복을 내려 한 해를 장식하시니 당신 수레 지나는 데마다 기름이 철철 흐릅니다.
                                시편 65:11

사랑하는 연인들도 그들이 냉정하거나, 계산적이지 않다면 사랑하는 사람과 온전히 하나가 되고픈 것 외에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 연민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들도 한계를 짓지 않고, 거래하지 않고, 절충이나 협상을 넘어서는 사랑을 위해 두 사람의 사랑을 방해하는 모든 장애물들과 다리들을 불살라 버립니다. 그런데 어떻게 하느님의 사랑이 연인들의 사랑보다 크고, 높고, 깊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하느님 사랑에 빠져들 때, 우리는 온전히 하느님께 속하고, 우리의 영적 비만은 사라지며, 진정한 자신과 정체성을 회복합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의로우심으로 이미 온전하지만, 우리의 죄로 인해 아직 온전하지 못한 역설적 존재입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의로움에 의지하여 실재로 온전함에 이르러야 할 존재입니다. 우리의 진정한 자아는 치유되어야 하고, 온전해져야 합니다. 실상 필요한 것은 한 가지뿐(루가 10:42)이라고 하신 주님의 말씀처럼...

기도가 중요한 이유는 기도가 하느님의 의로우심에 힘입어 온전함에 이르는 길 위에 우리를 세워주기 때문입니다. 기도는 하느님 임재훈련의 핵심이며 하늘에 이르는 길입니다. 다른 길은 없습니다. 때문에 우리는 우리 삶을 오염시키는 거짓 신들과 우상들로부터 완전히 돌아서 우리 전부를 하느님께 드려야 합니다. 우리의 모든 것을 다해 하느님을 사랑하라는 첫 번째 계명은 조금이라도 우리 마음을 우상들에게 빼앗기지 말라는 하느님의 요청입니다. 그러나 오해하지 마십시오. 이 말은 우리에게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피조물들을 사랑하지 말라는 뜻이 아닙니다. 그 말은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선물로 주신 피조물들을 하느님의 자리에 두어서는 안 되며, 인간은 그 피조물들과 관계함에 있어 하느님의 창조질서와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는 의미이기 때문입니다.

- 김홍일 (기도하는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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