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하는삶) 영혼의 성과 영적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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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국샬렘 댓글 0건 조회 795회 작성일 23-03-22 21:51본문
데레사는 자신의 자서전을 쓰던 시절까지만 하여도 그녀 스스로 아직 영적결혼을 체험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럼 점에서 그 후에 쓰인 ‘영혼의 성’은 그녀가 기도 중에 받은 은혜와 경험이 충만해져 있을 때, 자신이 경험한 묵상기도의 등급을 더욱 정확하고 세밀하게 묘사하였다는 점에서 데레사의 영적체험을 종합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이같은 등급의 구분은 이후 영적성숙의 과정을 경직된 단계적 과정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빌미를 제공하기도 하였습니다. 여러 영성가들은 영성수련 과정을 초급, 중급, 고급 과정으로 구분하고, 한 단계를 마치고 난 후, 그 다음 단계의 수련을 거치면 성장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것처럼 포장하는 위험을 경계하였습니다.
리챠드 우드 Richard Woods는 그의 논문 “Stages of Spiritual Development”에서 영적성장에 대한 우리의 이해가 그리스도교 역사에서 어떤 과정을 통하여 변형되고, 단계론적으로 고착화되었는지를 이해하는 데 유익한 도움을 줍니다.
그의 논문에 따르면 신약시대부터 중세 초기까지 영적경험들에 대한 진술들이 발전하였는데 이는 사도 바오로가 부드러운 음식을 먹어야 할 어린 신앙과 단단한 음식을 먹어도 되는 성숙한 신앙을 구분한 데서(히브 5:12) 유래합니다. 이때 젖먹이 어린이를 지칭하는 단어 ‘네피오스(νήπιος)’는 신약에서 주로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되었습니다. 이같은 성숙모델을 당시 영지주의자나 이교철학자들이 영적성숙을 표현하는 데 사용하기 시작하였고, 그 이후 초대교회에서 영적인 삶의 점진적 발전이라는 개념이 생겨났으며 닛사의 그레고리 Gregory of Nyssa는 뻗어나감(epectasis 필립 3:13)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여 믿는 이들이 그리스도의 온전하신 모습에 이르기까지 성장해 나가는 여정을 정화, 조명, 일치라는 개념으로 제시하였습니다. 그는 또한 프로코페(progress, 발전)라는 단어를 사용하여, 완성을 향한 발전을 설명하였는데, 이것은 그가 영적성장을 하늘에 이르러서도 미완으로 계속 추구되어야 할 신비한 것으로 이해하였음을 보여줍니다.
그 이후 영적인 성장과정을 표현하기 위하여 단계 step, stage, 지위 order, rank 등의 단어를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영적성장의 과정을 고착화되고 고정된 개념으로 표현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성숙의 상태를 영혼의 평화와 같은 상태 state(stage보다 고정된)라는 개념으로 표현하기 시작하였고, 영적성숙이 한 방향으로, 그리고 점진적으로 이루어진다는 첫 타협이 이루어지면서, 어린 아기 같은 단계에서 점차 힘과 통찰과 내적일치(integrity)를 이뤄감에 따라 어른의 단계로 나아간다는 영적성장의 모델이 생겨나게 됩니다. 어떤 사람들은 빠르게, 어떤 사람들을 더디게 성장하고, 어떤 경우엔 전혀 일어나지 않는 경우도 있다고 여겼으며, 주변 상황들이 그 성장에 도움이 되거나 장애가 되기도 하지만, 참 인간, 즉 하느님의 비젼에 도달하려는 자연스러운 움직임을 각 단계들이 나타내 준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초대 그리스도교 영적 전통에서 정화, 조명, 일치라는 영적여정의 모델은 순차적으로 발생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영적훈련을 마친 사람들이 도달해야 할 중요한 행동 목표(important behavioral objectives)들을 설명하는 데 초점이 있었습니다. 지난 세기부터 널리 퍼진 편견과는 다르게, 초대교회의 저자들은 그리스도인의 영적인 성숙의 과정을 정적인 과정이 아니라 유동적이고 역동적인 의미로 사용하였습니다. 그러나 영적 경험들(예를 들면 정화, 조명, 일치)에 대한 서술들이 발전하면서 점차 각 시기가 뚜렷하게 구분되기 시작하였고, 아빌라의 테레사에 이르러 그 표현이 건물의 방과 같이 더 체계적으로 분리되었습니다. 영적 성숙에 대한 관심이 역동성에서 떠나 이론적인 단계와 예측 가능한 구조로 옮겨가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러나 데레사에 대한 최근 연구는 그녀가 이야기하는 일곱 궁방을 단계론적인 과정으로 이해하기 보다는 오히려 역동적인 여정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우선 데레사는 ‘영혼의 성’에서 하느님과의 합일로 나아가는 영적여정을 일곱 개의 궁방으로 표현하였지만 그 ‘궁방의 숫자는 늘일 수도 있고, 줄일 수도 있는 것’이었다고 말합니다. 다만 그녀는 자신의 영적여정을 설명하는데 완전 수 7, 일곱을 선택하였고, 그것은 그녀의 지적이고 합리적인 계획이었습니다.
“내가 다룬 바는 일곱 궁방뿐이었지만 그 궁방마다의 위 아래로 옆으로 많은 궁방이 있습니다.” - 영혼의 성, 제 7궁방. 4장 3항 -
또한 데레사는 영적여정을 우리의 영혼을 위한 하느님의 사랑과 하느님을 위한 우리 영혼의 사랑이라는 두 힘의 상호작용 과정을 통하여 이루어지는 여정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녀는 자신의 자서전에서 이 여정이 굳어진 어떤 순차적 단계를 의미하기보다는 역동적인 과정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내가 말한 것을 절대로 잊지 말기를 바랍니다. 영혼은 우리가 알다시피 성장합니다. 이는 사실입니다만 영혼의 성장은 육체가 성장하는 것과 다릅니다. 어린 아이가 자라서 어른 키만큼 되면 다시 줄어들어 또 다시 작은 몸집으로 변하지는 않습니다. 그렇지만 영혼에 대해서는 주님께서 그렇게 하십니다......주님은 우리의 보다 큰 선익을 위해 우리로 하여금 겸손하게 하시고, 귀양살이하는 이 땅에 있는 동안에 스스로 조심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일깨워 주시려 하십니다..... 이 영성의 길에서 제아무리 거인의 키만큼 크다 해도 가끔은 어린아이 상태로 되돌아가서 아기처럼 젖을 빨 필요가 없는 영혼은 없습니다....이것은 너무나 중대한 일이라서 이 후에도 가끔 되풀이 할 것입니다.”
- 자서전 13장 中에서 -
‘영혼의 성’ 넷째 궁방에서 그녀는 영혼의 성장이 어떤 법칙이나 예측 가능한 과정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기보다 자유로운 성령의 은총과 믿는 이들의 응답으로 이루어짐을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이 궁방에 이르기까지 먼저 다른 궁방살이를 오래 해야만 되는 듯이 생각할지 모릅니다. 물론 이미 말한바와 같이 그러는 것이 보통입니다마는 일정한 법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여러분이 거듭 거듭 들으신 것처럼 주님은 당신이 주고 싶으신 때에, 주고 싶으신 대로, 주고 싶으신 사람에게 은혜를 주시는 것이고, 또 그 은혜는 당신의 것이므로 누구에게도 불의를 하지 않으십니다.”
그녀는 또 자신의 자서전 34장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 주님은 가끔 다른 이에게는 1년 후에 주시는 관상의 은혜를 20년이 지나도록 주시지 않으십니다. 그 이유는 주님만이 아십니다.”
이처럼 영혼의 성화과정에서 하느님 자비의 직접적인 개입은 신학적 이론에 의해 세워진 영적 성장의 논리적이고 규칙적인 과정을 혼란에 빠뜨립니다. 그녀는 자서전 39장에서 다음과 같이 고백하고 있습니다.
“아! 나의 하느님, 몇 번이나 우리가 영적인 것들을 세상의 것들처럼 판단하기 원했으며 우리의 보잘 것 없는 지식과 진리에 반대되는 소견에 의해 판단했는지요! 우리는 묵상기도의 실천을 몇 년이 흐른 후에 판단해야만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측정을 하느님께 맡겨야하고 그분 마음에 들 때 그 분의 은혜를 계산 없이 주시고...”
그녀는 기도하는 사람이 자신의 기도체험을 판단하는 데 초탈하여야 하고, 자신의 논리를 찾는 것을 단념하고 하느님 자비의 작용에 자신을 맡겨야 함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박해자였던 사울은 다마스커스 도상에서 땅에 쓰려졌고 이방인을 위한 위대한 사도 바오로로 변화되었습니다. 기도의 성녀 데레사는 스스로 자신이 저술한 ‘영혼의 성’의 일곱 궁방이 영적성장을 감싸고 있는 신비의 기초 위에 놓여 져야 함을 역설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느님의 자비는 단계들을 무시할 수 있고, 정화의 질서를 여기 혹은 저기로 바꿀 수 있고, 거룩함의 새로운 형태를 만들 수도 있으며, 데레사가 언급하고 있는 상승의 아름다운 규범을 깨뜨릴 수 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영혼의 여정에서 ‘초보자로 다시 떨어질 위험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데레사의 조언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영적여정에서 우리가 지금 성장의 어느 단계에 있는가에 대한 관심과 집착보다 항상 깨어서 하느님과의 친밀한 교제를 나누고, 성령 하느님의 인도하심에 기꺼이 응답하는 일이야말로 영적여정의 중심이기 때문입니다.
- 김홍일 (기도하는 삶)
리챠드 우드 Richard Woods는 그의 논문 “Stages of Spiritual Development”에서 영적성장에 대한 우리의 이해가 그리스도교 역사에서 어떤 과정을 통하여 변형되고, 단계론적으로 고착화되었는지를 이해하는 데 유익한 도움을 줍니다.
그의 논문에 따르면 신약시대부터 중세 초기까지 영적경험들에 대한 진술들이 발전하였는데 이는 사도 바오로가 부드러운 음식을 먹어야 할 어린 신앙과 단단한 음식을 먹어도 되는 성숙한 신앙을 구분한 데서(히브 5:12) 유래합니다. 이때 젖먹이 어린이를 지칭하는 단어 ‘네피오스(νήπιος)’는 신약에서 주로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되었습니다. 이같은 성숙모델을 당시 영지주의자나 이교철학자들이 영적성숙을 표현하는 데 사용하기 시작하였고, 그 이후 초대교회에서 영적인 삶의 점진적 발전이라는 개념이 생겨났으며 닛사의 그레고리 Gregory of Nyssa는 뻗어나감(epectasis 필립 3:13)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여 믿는 이들이 그리스도의 온전하신 모습에 이르기까지 성장해 나가는 여정을 정화, 조명, 일치라는 개념으로 제시하였습니다. 그는 또한 프로코페(progress, 발전)라는 단어를 사용하여, 완성을 향한 발전을 설명하였는데, 이것은 그가 영적성장을 하늘에 이르러서도 미완으로 계속 추구되어야 할 신비한 것으로 이해하였음을 보여줍니다.
그 이후 영적인 성장과정을 표현하기 위하여 단계 step, stage, 지위 order, rank 등의 단어를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영적성장의 과정을 고착화되고 고정된 개념으로 표현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성숙의 상태를 영혼의 평화와 같은 상태 state(stage보다 고정된)라는 개념으로 표현하기 시작하였고, 영적성숙이 한 방향으로, 그리고 점진적으로 이루어진다는 첫 타협이 이루어지면서, 어린 아기 같은 단계에서 점차 힘과 통찰과 내적일치(integrity)를 이뤄감에 따라 어른의 단계로 나아간다는 영적성장의 모델이 생겨나게 됩니다. 어떤 사람들은 빠르게, 어떤 사람들을 더디게 성장하고, 어떤 경우엔 전혀 일어나지 않는 경우도 있다고 여겼으며, 주변 상황들이 그 성장에 도움이 되거나 장애가 되기도 하지만, 참 인간, 즉 하느님의 비젼에 도달하려는 자연스러운 움직임을 각 단계들이 나타내 준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초대 그리스도교 영적 전통에서 정화, 조명, 일치라는 영적여정의 모델은 순차적으로 발생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영적훈련을 마친 사람들이 도달해야 할 중요한 행동 목표(important behavioral objectives)들을 설명하는 데 초점이 있었습니다. 지난 세기부터 널리 퍼진 편견과는 다르게, 초대교회의 저자들은 그리스도인의 영적인 성숙의 과정을 정적인 과정이 아니라 유동적이고 역동적인 의미로 사용하였습니다. 그러나 영적 경험들(예를 들면 정화, 조명, 일치)에 대한 서술들이 발전하면서 점차 각 시기가 뚜렷하게 구분되기 시작하였고, 아빌라의 테레사에 이르러 그 표현이 건물의 방과 같이 더 체계적으로 분리되었습니다. 영적 성숙에 대한 관심이 역동성에서 떠나 이론적인 단계와 예측 가능한 구조로 옮겨가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러나 데레사에 대한 최근 연구는 그녀가 이야기하는 일곱 궁방을 단계론적인 과정으로 이해하기 보다는 오히려 역동적인 여정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우선 데레사는 ‘영혼의 성’에서 하느님과의 합일로 나아가는 영적여정을 일곱 개의 궁방으로 표현하였지만 그 ‘궁방의 숫자는 늘일 수도 있고, 줄일 수도 있는 것’이었다고 말합니다. 다만 그녀는 자신의 영적여정을 설명하는데 완전 수 7, 일곱을 선택하였고, 그것은 그녀의 지적이고 합리적인 계획이었습니다.
“내가 다룬 바는 일곱 궁방뿐이었지만 그 궁방마다의 위 아래로 옆으로 많은 궁방이 있습니다.” - 영혼의 성, 제 7궁방. 4장 3항 -
또한 데레사는 영적여정을 우리의 영혼을 위한 하느님의 사랑과 하느님을 위한 우리 영혼의 사랑이라는 두 힘의 상호작용 과정을 통하여 이루어지는 여정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녀는 자신의 자서전에서 이 여정이 굳어진 어떤 순차적 단계를 의미하기보다는 역동적인 과정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내가 말한 것을 절대로 잊지 말기를 바랍니다. 영혼은 우리가 알다시피 성장합니다. 이는 사실입니다만 영혼의 성장은 육체가 성장하는 것과 다릅니다. 어린 아이가 자라서 어른 키만큼 되면 다시 줄어들어 또 다시 작은 몸집으로 변하지는 않습니다. 그렇지만 영혼에 대해서는 주님께서 그렇게 하십니다......주님은 우리의 보다 큰 선익을 위해 우리로 하여금 겸손하게 하시고, 귀양살이하는 이 땅에 있는 동안에 스스로 조심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일깨워 주시려 하십니다..... 이 영성의 길에서 제아무리 거인의 키만큼 크다 해도 가끔은 어린아이 상태로 되돌아가서 아기처럼 젖을 빨 필요가 없는 영혼은 없습니다....이것은 너무나 중대한 일이라서 이 후에도 가끔 되풀이 할 것입니다.”
- 자서전 13장 中에서 -
‘영혼의 성’ 넷째 궁방에서 그녀는 영혼의 성장이 어떤 법칙이나 예측 가능한 과정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기보다 자유로운 성령의 은총과 믿는 이들의 응답으로 이루어짐을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이 궁방에 이르기까지 먼저 다른 궁방살이를 오래 해야만 되는 듯이 생각할지 모릅니다. 물론 이미 말한바와 같이 그러는 것이 보통입니다마는 일정한 법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여러분이 거듭 거듭 들으신 것처럼 주님은 당신이 주고 싶으신 때에, 주고 싶으신 대로, 주고 싶으신 사람에게 은혜를 주시는 것이고, 또 그 은혜는 당신의 것이므로 누구에게도 불의를 하지 않으십니다.”
그녀는 또 자신의 자서전 34장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 주님은 가끔 다른 이에게는 1년 후에 주시는 관상의 은혜를 20년이 지나도록 주시지 않으십니다. 그 이유는 주님만이 아십니다.”
이처럼 영혼의 성화과정에서 하느님 자비의 직접적인 개입은 신학적 이론에 의해 세워진 영적 성장의 논리적이고 규칙적인 과정을 혼란에 빠뜨립니다. 그녀는 자서전 39장에서 다음과 같이 고백하고 있습니다.
“아! 나의 하느님, 몇 번이나 우리가 영적인 것들을 세상의 것들처럼 판단하기 원했으며 우리의 보잘 것 없는 지식과 진리에 반대되는 소견에 의해 판단했는지요! 우리는 묵상기도의 실천을 몇 년이 흐른 후에 판단해야만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측정을 하느님께 맡겨야하고 그분 마음에 들 때 그 분의 은혜를 계산 없이 주시고...”
그녀는 기도하는 사람이 자신의 기도체험을 판단하는 데 초탈하여야 하고, 자신의 논리를 찾는 것을 단념하고 하느님 자비의 작용에 자신을 맡겨야 함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박해자였던 사울은 다마스커스 도상에서 땅에 쓰려졌고 이방인을 위한 위대한 사도 바오로로 변화되었습니다. 기도의 성녀 데레사는 스스로 자신이 저술한 ‘영혼의 성’의 일곱 궁방이 영적성장을 감싸고 있는 신비의 기초 위에 놓여 져야 함을 역설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느님의 자비는 단계들을 무시할 수 있고, 정화의 질서를 여기 혹은 저기로 바꿀 수 있고, 거룩함의 새로운 형태를 만들 수도 있으며, 데레사가 언급하고 있는 상승의 아름다운 규범을 깨뜨릴 수 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영혼의 여정에서 ‘초보자로 다시 떨어질 위험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데레사의 조언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영적여정에서 우리가 지금 성장의 어느 단계에 있는가에 대한 관심과 집착보다 항상 깨어서 하느님과의 친밀한 교제를 나누고, 성령 하느님의 인도하심에 기꺼이 응답하는 일이야말로 영적여정의 중심이기 때문입니다.
- 김홍일 (기도하는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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