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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하는삶) 기도할 때 무슨 말을 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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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국샬렘 댓글 0건 조회 662회 작성일 23-03-22 2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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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할 때 무슨 말을 해야 하나요?”라고 누군가 나에게 묻는다면, 나는 그 질문에 대답하기 위하여 그 사람에게 “당신은 기도할 때 무엇을 합니까?”라고 다시 물을 것입니다. 우리는 기도 중에 하느님과 함께 합니다. 그때 하느님은 당신에게 누구입니까? 당신에게 하느님은 어떤 의미입니까? 성서는 우리에게 하느님은 무한한 사랑이라고 증언합니다.

당신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을 때 무엇을 합니까? 대화하고, 바라보고, 포옹하고, 입 맞추고... 기도할 때 우리는 하느님과 그렇게 친교를 나눌 수 있습니다. 그것이 기도가 지루하지 않은 이유입니다. 당신이 가장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할 때 지루함을 느끼지 않는 것처럼 기도는 사랑입니다. 사랑은 인생에서 지루함에 대한 가장 분명한 대답입니다. 당신이 사랑을 멈추기 전까지 사랑은 결코 지루하지 않습니다. 지루함을 느끼게 하는 것들은 낡은 것이지만 사랑은 늘 젊고, 새롭고, 늘 처음 같습니다.

사랑이신 하느님과 사랑을 나눌 때, 우리는 무엇을 합니까? 우리가 하느님과 함께 하고 싶은 것들을 하고, 말하고 싶은 것들을 말할 수 있습니다. 기도할 때, 우리는 하느님 사랑의 네 가지 얼굴을 향하여 돌아섭니다. 그것은 기도의 네 가지 주제들이기도 합니다. 첫째는 참회(懺悔)이고, 둘째는 경배(敬拜)이며, 셋째는 청원(請願)이고, 마지막은 감사(感謝)입니다.

참회는 사랑의 행위입니다. 영화 역사상 가장 어리석은 명대사 가운데 하나는 ‘러브스토리’에서 주연 배우가 한 말일 것입니다. “사랑은 결코 미안하다고 말하지 않는 거야.”이 말의 정반대는 ‘사랑은 미안하다고 말하는 것이야.’일 것입니다. 독일의 나찌들은 유대인들을 향하여 미안하다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일본의 극우들도 자신들이 행한 침략과 유린에 대하여 미안하다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미안하다고 말하는 참회는 하느님의 사랑에 대한 전적인 신뢰 안에서 우리가 잘못한 행동에 대한 고백을 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것은 사랑입니다.

하지만 우리의 잘못 때문에 우리를 향한 사랑을 거둘지 모르는 두려운 대상에게 누가 신뢰하는 마음으로 자신의 잘못을 고백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를 온전히 이해하지도 못하고, 우리의 잘못 때문에 우리를 거절할지도 모르는 변덕스러운 사랑 앞에서 어떻게 자신의 잘못을 편안한 마음으로 고백할 수 있겠습니까? 생각해보십시오. 누군가가 내가 아주 잘하고 있을 때에만, 내가 사랑받을 만한 가치가 있는 삶을 살고 있을 때에만 나를 사랑한다면, 어떻게 그 사랑 앞에서 자신의 잘못과 부족함을 고백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하느님은 언제나 우리를 사랑하시며, 오직 하느님만이 우리를 향한 사랑을 멈추지 않으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느님께 우리의 잘못을 고백할 수 있습니다.

경배 또한 분명히 사랑입니다. ‘나는 당신을 경배합니다.‘라는 말은 사랑하는 사람이 하는 말입니다. 그것은 우리 자신에게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오직 무한하고 완전하신 하느님의 사랑으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라틴어로 경배를 뜻하는 latria는 유한함을 뜻하는 dulia와 구별되는 말로서 무한함을 뜻합니다. 사람의 존경과 사랑은 그것이 아무리 크고 높을지라도 유한하지만 하느님은 무한하십니다. 경배는 그 무한한 사랑을 향하여 우리가 올려 드리는 사랑의 예배입니다.

청원은 자신과 다른 사람들을 위하여 사랑하는 대상에게 무언가를 청하는 사랑입니다. 교회는 이웃을 위한 청원을 중보(仲保)라고 합니다. 청원과 중보는 우리가 하느님 안에서 자신과 이웃을 사랑하는 첫걸음입니다. 하느님께서 사랑하는 우리 자신과 이웃을 위해 기도하는 것은 하느님 안에서 우리가 자신과 이웃을 사랑하는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교회가 세상과 이웃의 고통과 아픔에 연대하기 위해 내딛는 첫 걸음은 바로 중보하며, 기도하는 일입니다.

마지막으로 감사는 우리가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육화된 사랑과 선물들에 대하여 반응하는 하느님을 향한 우리의 사랑입니다. 사람들은 특별하고 엄청난 선물이 있어야 감사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우리 삶은 하느님께서 베푸시는 작은 사랑의 선물들로 둘러싸여 있습니다. 따뜻한 햇살, 시원한 바람, 길가에 피어 난 꽃들, 아이의 미소, 동료의 따뜻한 친절, 모르는 이웃들의 작은 도움들.... 자세히 살펴보면 우리 삶은 감사할 것들로 넘쳐납니다. 

참회와 함께 기도를 시작할 때, 우리는 겸손하고 정직하게 오직 길이시고(요한 14:6), 중재자이신(딤전 2:5) 하느님의 현존 앞으로 나아갑니다. 십자가 위에서 흘리신 예수님의 눈물이 성막과 사람들 사이를 가로막고 있던 성전 휘장을 찢은 것처럼(마태 27:50-51, 히브 10:19) 우리의 눈물과 참회는 우리와 하느님 사이에 놓인 휘장을 찢고 우리가 하느님의 현존 안으로 들어가는 문을 엽니다.

참회로 하느님의 현존 앞에 나아간 우리는 이제 하느님을 경배합니다. 경배는 기도의 중심입니다. 성서가 증언하고 있는 기도의 대부분은, 특히 시편은 찬양과 경배로 채워져 있습니다. 기도 중에 대부분의 시간은 경배로 드려져야 합니다. 경배에는 제한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느님이 무한하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하늘에서 드리는 우리의 경배는 결코 멈추지도 않고, 지루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지상에서 드리는 모든 경배는 가장 천상적인 것입니다.

참회처럼 청원기도는 기도 중에 대개 비교적 짧게 드려지는 기도인데 그것은 우리의 필요는 그리 많지 않고,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우리보다 더 잘 알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양식을 주시고...‘라고 기도하라 하셨습니다. 우리 자신을 위해서는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는 그것으로 충분치 않습니다. 때문에 우리는 청원 중에 자신을 위한 기도보다 다른 사람들을 위한 중보에 더 많은 시간을 써야 합니다. 왜냐하면 나 한 사람의 필요보다 다른 사람들의 필요가 더욱 많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감사의 기도로 마치는 것이 좋습니다. 왜냐하면 경배가 무한하듯이 감사도 그렇습니다. 우리는 하느님으로부터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선물과 축복을 받으며 살고 있습니다. 우리의 신앙이 성장하는 만큼 우리가 받은 은혜와 선물을 헤아릴 수 있는 능력도 자라납니다. 우리가 받은 축복을 헤아리는 것은 단지 좋은 기도와 바람직한 정직함만이 아니라 우리의 절망과 분노, 의심과 냉담함을 위한 좋은 치유제이기도 합니다.

- 김홍일 (기도하는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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