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하는삶) 기도와 분심(分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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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국샬렘 댓글 0건 조회 703회 작성일 23-03-22 21:41본문
만일 당신이 진지하게 기도하는 사람이라면 당신은 기도 중에 실패와 실망의 경험을 피할 수 없을 것입니다. 당신이 기도의 성인들보다 훌륭한 사람이 아닌 한 당신은 그 실패와 실망을 한 두 번이 아니라 반복적으로, 때로는 오랜 기간 동안 경험하였을 것입니다. 하지만 성인들도 우리처럼 모두 실패의 경험을 하며 살았습니다. 그들이 성인이 된 것은 기도 중에 분심이 없어서가 아니라 반복되는 분심에도 불구하고 지속적으로 기도하였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기도를 시작할 때, 하느님을 향하여 마음을 모읍니다. 그리고 하느님을 향한 우리의 지향은 기도 가운데 깊은 평화와 기쁨 그리고 빛을 가져다주곤 합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는 곧 우리가 지속적으로 하느님을 향하여 마음을 모을 수 없다는 실망스러운 경험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같은 경험은 기도 중에 누렸던 우리의 평화와 기쁨을 이내 빼앗아 가고 맙니다. 기도 중에 우리는 공상에 잠겨있거나, 잠들어 있거나, 다른 일들에 대한 걱정과 생각에 빠져있는 자신을 발견하고 실망합니다. 우리가 실망하는 이유는 이같은 현상들이 우리의 의지에 반하여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느님을 향한 지향을 멈추고 싶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되지 않는다고 너무 실망하지 마십시오. 예수님께서도 기도 중에 ‘마음은 간절하나 몸이 말을 듣지 않는구나!’(마태 26:41)하시며 탄식하셨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약함에 대하여 실망할 수 있지만 놀랄 필요는 없습니다. 우리는 마음이 우리 의지와 관계없이 자유롭게 뛰어다니는 어린아이 같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만일 우리 마음이 이처럼 습관적으로 하느님으로부터 달아날 수 있다는 사실에 놀란다면, 그것은 실망보다 더 심각한 문제가 될 수 있는데, 그것은 교만이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은 우리의 연약함을 영원히 참으시며, 누구보다 우리의 연약함을 잘 아시는 분이십니다. 때문에 우리 역시 우리의 연약함을 인내해야 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성취가 아니라 우리의 지향과 의지 그리고 우리의 중심을 더욱 소중하게 여기십니다. 마더 데레사Mother Teresa가 말했듯이 ‘하느님은 우리가 성공적이 되기를 바라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신실하길 원하십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기도 중에 분심이 드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많은 책들이 기도 중에 일어나는 분심에 대하여 수많은 주장들을 펴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같은 주장들은 우리가 하느님을 사랑하고, 그분께 우리의 지향을 모으는 과정에서 또 다른 문제와 분심들을 만들어 내기도 합니다. 기도 중에 직면하는 분심을 다루는 가장 좋은 방법이란 없습니다. 단순히 다시 하느님께 돌아가는 것뿐입니다. 다시 하느님을 향하여 우리의 주의를 기울이는 것뿐입니다.
자책을 하거나 미안해하지 마십시오. 또 다음에는 어떻게 피할 수 있을까 계획을 세우지도 마십시오. 당신 자신이나 분심에 대하여 더 이상 생각하지 마십시오. 그럴만한 가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것들은 당신이 무엇을 하든 그저 당신 머리 주변을 윙윙 거리며 날아다니는 날 파리와 같은 것들입니다. 파리채로 큰 곤충을 잡듯 거친 공격으로 그것을 잡을 수 없습니다. 당신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당신이 분심에 빠진 것을 알아차렸을 때, 몇 번이고 반복하여 하느님께로 당신의 주의를 다시 돌리는 것뿐입니다.
당신이 모든 주의를 기울여 수행해야만 하는 어떤 중요한 일을 하는 중이라고 생각해 보십시오. 예를 들어 당신이 버스 운전사가 되어 손님을 가득 태운 채 고속도로를 빠른 속도로 주행하고 있다고 상상해 보십시오. 운전을 하고 있는 당신 머리 주변으로 작은 파리 한 마리가 계속 날아다니며 당신의 운전을 방해하고 있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당신은 운전을 계속할 수도, 버스를 세울 수도 없습니다. 당신이 할 수 있는 선택은 두 가지 뿐입니다. 하나는 파리에게 주의를 기울이고 있다가 적절한 시점에 파리를 때려잡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선택은 운전을 위험에 빠지게 할 수 있습니다. 또 다른 선택은 한 마리든 백 마리든 머리 주위를 떠도는 파리를 무시하고 버스 운전자로서 자신의 직무에 주의를 기울이며, 손님들을 안전하게 목적지까지 데려다 주는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관심을 바꾸려면 다른 것을 향하여 주의를 돌려야만 합니다. 토마스 아퀴나스의 이야기처럼 ‘나쁜 열정을 내보내는 유일한 방법은 선한 열정을 갖는 것입니다.’ 당신의 마음이 어린 아이처럼 떠돌며 방황할 때, 당신은 마치 엄마처럼 기꺼이 그것을 다시 돌아오게 하여야 합니다. 그런데 이 때, 기도하는 사람이 마음을 다시 하느님께로 향하는 일은 자기 주도적인 의지적 행위이기보다 하느님께 복종하고자 하는 부드러운 응답에 더 가까운 것입니다. 우리 마음을 다시 하느님께로 향하는 선택은 주목(attention)하는 것이라고 하기 보다는 지향(指向,intention)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더 적절합니다. 지향은 고요하고 열린 기다림과 내어맡김에 가깝습니다. 기도생활의 문제는 우리가 언제, 어떻게 기도하느냐가 보다, 하느님이 언제 어떻게 우리에게 임하시가에 달려있기 때문입니다.
기도 중에 일어나는 분심을 다루는 일에서 가장 핵심적인 세 가지를 다시 요약하자면, 첫째는 분심이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분심을 경험하는 자신을 인내하는 것입니다. 둘째는 분심들에 관심을 기울이지 말고 몇 번이고 반복하여 다시 마음을 하느님께로 마음을 향하는 것입니다. 셋째는 마음을 다시 하느님께로 향하는 것은 우리의 의지라기보다 의향이라는 점을 기억하는 일입니다.
자기 생각이나 관심과의 싸움이라는 여정을 거치지 않고 기도는 발전할 수 없습니다. 기도 중에 자기관심에 몰두하여 있으면서 하느님을 사랑한다고 말하는 일은 소용없는 일입니다. 우리는 기도 중에도 생각할 수 있지만, 그 생각은 하느님 안에서, 하느님과 함께, 하느님과의 관계 속에서 일어나는 교제이어야 합니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당신의 마음을 하느님을 향하여 계속하여 다시 돌리는 일입니다. 그것이 무엇이든 당신 자신을 하느님을 향하여 내어드리는 일입니다. 자기 연민과 유혹의 생각들을 거절하는 일입니다. 그러면 하느님과 당신 사이에 소통라인은 더 넓어지게 되고, 하느님의 은총이 당신에게 흘러갈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심은 우리 노력이나, 어떤 특별한 경험으로 인한 결과가 아니라 조건 없이 주어지는 하느님의 선물이며 은총입니다. 우리가 기도 중에 하느님의 현존을 희미하게 느끼거나, 혹은 못 느끼고 있을지라도 하느님은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하느님의 현존은 우리의 체험보다는 우리 믿음에 달려있다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느님의 현존은 기도 중에 우리가 체험하는 어떤 상태가 아니라 오히려 하느님을 갈망하고, 함께 하려는 우리의 지향에 달려있습니다.
하느님과 우리 의지의 일치는 오직 하느님께로 향하는 우리 생각과 마음의 도움을 받아서 보다 강렬해집니다. 하지만 하느님을 향하는 고요하고 집중된 마음은 기도하는 자리에 앉자마자 생기는 것이 아니라 점차적으로 생겨납니다. 그 과정에서 우리가 하는 노력보다는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이 더 크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기도 중에 우리가 할 수 있는 노력이란 하느님을 향한 우리의 갈망을 유지하는 일입니다. 그 갈망으로부터 우리를 떼어놓는 어떤 다른 관심이나 생각이 떠오를지라도 그 갈망으로 다시 돌아가는 일입니다. 그러면 하느님을 향한 갈망이 당신 영혼 가운데서 점점, 그리고 매일 매일 성장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당신의 온 마음을 하느님께서 차지하시게 될 것입니다.
- 김홍일 (기도하는 삶)
우리는 기도를 시작할 때, 하느님을 향하여 마음을 모읍니다. 그리고 하느님을 향한 우리의 지향은 기도 가운데 깊은 평화와 기쁨 그리고 빛을 가져다주곤 합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는 곧 우리가 지속적으로 하느님을 향하여 마음을 모을 수 없다는 실망스러운 경험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같은 경험은 기도 중에 누렸던 우리의 평화와 기쁨을 이내 빼앗아 가고 맙니다. 기도 중에 우리는 공상에 잠겨있거나, 잠들어 있거나, 다른 일들에 대한 걱정과 생각에 빠져있는 자신을 발견하고 실망합니다. 우리가 실망하는 이유는 이같은 현상들이 우리의 의지에 반하여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느님을 향한 지향을 멈추고 싶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되지 않는다고 너무 실망하지 마십시오. 예수님께서도 기도 중에 ‘마음은 간절하나 몸이 말을 듣지 않는구나!’(마태 26:41)하시며 탄식하셨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약함에 대하여 실망할 수 있지만 놀랄 필요는 없습니다. 우리는 마음이 우리 의지와 관계없이 자유롭게 뛰어다니는 어린아이 같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만일 우리 마음이 이처럼 습관적으로 하느님으로부터 달아날 수 있다는 사실에 놀란다면, 그것은 실망보다 더 심각한 문제가 될 수 있는데, 그것은 교만이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은 우리의 연약함을 영원히 참으시며, 누구보다 우리의 연약함을 잘 아시는 분이십니다. 때문에 우리 역시 우리의 연약함을 인내해야 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성취가 아니라 우리의 지향과 의지 그리고 우리의 중심을 더욱 소중하게 여기십니다. 마더 데레사Mother Teresa가 말했듯이 ‘하느님은 우리가 성공적이 되기를 바라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신실하길 원하십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기도 중에 분심이 드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많은 책들이 기도 중에 일어나는 분심에 대하여 수많은 주장들을 펴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같은 주장들은 우리가 하느님을 사랑하고, 그분께 우리의 지향을 모으는 과정에서 또 다른 문제와 분심들을 만들어 내기도 합니다. 기도 중에 직면하는 분심을 다루는 가장 좋은 방법이란 없습니다. 단순히 다시 하느님께 돌아가는 것뿐입니다. 다시 하느님을 향하여 우리의 주의를 기울이는 것뿐입니다.
자책을 하거나 미안해하지 마십시오. 또 다음에는 어떻게 피할 수 있을까 계획을 세우지도 마십시오. 당신 자신이나 분심에 대하여 더 이상 생각하지 마십시오. 그럴만한 가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것들은 당신이 무엇을 하든 그저 당신 머리 주변을 윙윙 거리며 날아다니는 날 파리와 같은 것들입니다. 파리채로 큰 곤충을 잡듯 거친 공격으로 그것을 잡을 수 없습니다. 당신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당신이 분심에 빠진 것을 알아차렸을 때, 몇 번이고 반복하여 하느님께로 당신의 주의를 다시 돌리는 것뿐입니다.
당신이 모든 주의를 기울여 수행해야만 하는 어떤 중요한 일을 하는 중이라고 생각해 보십시오. 예를 들어 당신이 버스 운전사가 되어 손님을 가득 태운 채 고속도로를 빠른 속도로 주행하고 있다고 상상해 보십시오. 운전을 하고 있는 당신 머리 주변으로 작은 파리 한 마리가 계속 날아다니며 당신의 운전을 방해하고 있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당신은 운전을 계속할 수도, 버스를 세울 수도 없습니다. 당신이 할 수 있는 선택은 두 가지 뿐입니다. 하나는 파리에게 주의를 기울이고 있다가 적절한 시점에 파리를 때려잡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선택은 운전을 위험에 빠지게 할 수 있습니다. 또 다른 선택은 한 마리든 백 마리든 머리 주위를 떠도는 파리를 무시하고 버스 운전자로서 자신의 직무에 주의를 기울이며, 손님들을 안전하게 목적지까지 데려다 주는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관심을 바꾸려면 다른 것을 향하여 주의를 돌려야만 합니다. 토마스 아퀴나스의 이야기처럼 ‘나쁜 열정을 내보내는 유일한 방법은 선한 열정을 갖는 것입니다.’ 당신의 마음이 어린 아이처럼 떠돌며 방황할 때, 당신은 마치 엄마처럼 기꺼이 그것을 다시 돌아오게 하여야 합니다. 그런데 이 때, 기도하는 사람이 마음을 다시 하느님께로 향하는 일은 자기 주도적인 의지적 행위이기보다 하느님께 복종하고자 하는 부드러운 응답에 더 가까운 것입니다. 우리 마음을 다시 하느님께로 향하는 선택은 주목(attention)하는 것이라고 하기 보다는 지향(指向,intention)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더 적절합니다. 지향은 고요하고 열린 기다림과 내어맡김에 가깝습니다. 기도생활의 문제는 우리가 언제, 어떻게 기도하느냐가 보다, 하느님이 언제 어떻게 우리에게 임하시가에 달려있기 때문입니다.
기도 중에 일어나는 분심을 다루는 일에서 가장 핵심적인 세 가지를 다시 요약하자면, 첫째는 분심이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분심을 경험하는 자신을 인내하는 것입니다. 둘째는 분심들에 관심을 기울이지 말고 몇 번이고 반복하여 다시 마음을 하느님께로 마음을 향하는 것입니다. 셋째는 마음을 다시 하느님께로 향하는 것은 우리의 의지라기보다 의향이라는 점을 기억하는 일입니다.
자기 생각이나 관심과의 싸움이라는 여정을 거치지 않고 기도는 발전할 수 없습니다. 기도 중에 자기관심에 몰두하여 있으면서 하느님을 사랑한다고 말하는 일은 소용없는 일입니다. 우리는 기도 중에도 생각할 수 있지만, 그 생각은 하느님 안에서, 하느님과 함께, 하느님과의 관계 속에서 일어나는 교제이어야 합니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당신의 마음을 하느님을 향하여 계속하여 다시 돌리는 일입니다. 그것이 무엇이든 당신 자신을 하느님을 향하여 내어드리는 일입니다. 자기 연민과 유혹의 생각들을 거절하는 일입니다. 그러면 하느님과 당신 사이에 소통라인은 더 넓어지게 되고, 하느님의 은총이 당신에게 흘러갈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심은 우리 노력이나, 어떤 특별한 경험으로 인한 결과가 아니라 조건 없이 주어지는 하느님의 선물이며 은총입니다. 우리가 기도 중에 하느님의 현존을 희미하게 느끼거나, 혹은 못 느끼고 있을지라도 하느님은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하느님의 현존은 우리의 체험보다는 우리 믿음에 달려있다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느님의 현존은 기도 중에 우리가 체험하는 어떤 상태가 아니라 오히려 하느님을 갈망하고, 함께 하려는 우리의 지향에 달려있습니다.
하느님과 우리 의지의 일치는 오직 하느님께로 향하는 우리 생각과 마음의 도움을 받아서 보다 강렬해집니다. 하지만 하느님을 향하는 고요하고 집중된 마음은 기도하는 자리에 앉자마자 생기는 것이 아니라 점차적으로 생겨납니다. 그 과정에서 우리가 하는 노력보다는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이 더 크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기도 중에 우리가 할 수 있는 노력이란 하느님을 향한 우리의 갈망을 유지하는 일입니다. 그 갈망으로부터 우리를 떼어놓는 어떤 다른 관심이나 생각이 떠오를지라도 그 갈망으로 다시 돌아가는 일입니다. 그러면 하느님을 향한 갈망이 당신 영혼 가운데서 점점, 그리고 매일 매일 성장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당신의 온 마음을 하느님께서 차지하시게 될 것입니다.
- 김홍일 (기도하는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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