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하는삶) 기도, 어떻게 해야 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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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국샬렘 댓글 0건 조회 667회 작성일 23-03-22 21:37본문
‘기도’란 우리를 에워싸고 있으며, 동시에 우리 가장 깊은 곳에 내주하시는 하느님께 우리가 드리는 모든 반응과 응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슬플 때나 기쁠 때, 평화로울 때나 두려울 때, 그 때 만일 우리가 사랑으로 우리를 감싸고 계시는 하느님의 눈길과 마음을 의식하고 그것에 반응하고 응답할 수 있다면, 그 모든 반응과 응답은 기도가 될 수 있습니다.
기도와 지향
그렇다면 기도하는 사람이 행하여야 할 첫 번째 일은 우리를 에워싸고 계신 하느님을 기억하고, 그 하느님을 향하여 주의를 기울이며, 그 하느님에게 이끌리기를 갈망하는 것입니다. 프랑수아 드 살레 St. Franciscus de Sales는 “기도하려는 사람은 자신이 어떤 분의 임재 안에 들어가야 하는지를 기억하고 기도를 시작해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기도를 시작하기 전에 무릎을 꿇거나, 두 손을 모으거나 혹은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라고 성호경(聖號經)을 외우며 기도를 시작합니다. 그것은 우리 기도의 지향을 분명히 하기 위함이며, 우리가 누군가를 만나기 전에 마음을 가다듬고 준비하듯 하느님 임재 안에 들어가기 위하여 마음을 준비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리스도교 기도에서 중요한 것은 방법이 아니라 ‘지향’입니다. ‘어떻게’가 아니라 ‘누구를 향하’여 기도하는가? 그것이 그리스도교적인 기도인가 아닌가를 구분하는 기준이 됩니다. 우리는 앉아서 기도할 수 있고, 서서 기도할 수도 있으며, 걸으면서 기도할 수 있고, 보면서 기도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또한 말로 기도할 수 있고, 침묵으로 기도할 수 있으며, 동작과 행동으로도 기도할 수 있습니다. 세상의 그 무엇도 끊어낼 수 없는 하느님과의 관계 안에 머무는 모든 것이 기도이기 때문입니다.
기도할 때 우리가 행하여야 할 두 번째 일은 하느님의 임재 안에 머물고자 하는 갈망과 함께 하느님 앞에서 우리의 마음을 정직하게 기꺼이 열어드리려는 의향입니다. 기도는 하느님 안에서 자신의 삶과 계획과 관계들을 정직하게 돌아보는 겸손과 하느님의 뜻에 기꺼이 승복하려는 순종적 의지로 하느님 앞에 나아가는 것입니다. 만일 기도하는 사람에게 이같은 태도가 결여되어 있다면, 말로만 드리거나, 습관적으로 드리는 대부분의 기도들이 그러하듯 그런 기도는 기계적이고 상투적이며 변화와 열매가 없는 기도에 그치고 말 것입니다.
다양한 기도의 방법이 있지만 우리들이 가장 쉽고 많이 경험하며, 자주 드리는 기도는 말로 드리는 구송(口誦)기도입니다. 사람들은 흔히 구송기도와 묵상 혹은 관상기도를 구분하여 말하지만 실재로 많은 사람들은 구송기도를 반복하다가 이따금 말을 멈추고 하느님 안에 머물면서 하느님을 향한 자신의 헌신이 새로워지는 것을 경험합니다. 마음을 다하여 구송기도를 실천하는 많은 사람들은 방법을 알지 못하지만 성령에 이끌려 관상기도의 높은 상태로 이끌리는 경험을 하기도 합니다. 아빌라의 데레사 St.Teresa of Avila는 소리 내어 천천히 주기도문으로 기도하는 중에도 순순한 관상을 경험할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예배 중에 우리가 드리는 기도문들을 마음을 다하여 천천히 읽어 보십시오. 순간, 순간 어느 구절, 어느 문장에서 하느님의 임재를 강하게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이처럼 기도할 때, 구송기도는 매우 내적인 기도가 되며, 아울러 마음(Heart)으로 드리는 기도가 될 수 있습니다.
구송기도는 또한 우리의 기도를 묵상으로 안내해 주는 다리 역할을 하기도 하고, 침묵기도 중에 산만해진 마음을 다시 하느님께 향할 수 있도록 도와주거나, 제대로 하느님께 주의를 집중할 수 있게 될 때까지 마음을 모으도록 하는데 큰 도움을 주기도 합니다. 우리는 성경말씀을 소리 내어 읽다가 마음에 울림을 주는 구절이나 단어에 멈추어, 하느님 임재 안에서 그 말씀과 함께 고요히 머물 수도 있고, 짧은 기도문을 반복하며 단순기도를 드리는 중에, 더 이상 기도문을 반복하고 싶지 않은 순간, 멈추고 하느님 안에 머물러 쉴 수도 있습니다.
기도는 사랑이다.
기도는 생각하는 것보다 쉽습니다. 어떤 사람은 자신에게는 기도가 너무 거룩하고, 어려운 일처럼 느껴진다고 말합니다. 그들은 때로 그같은 이유로 자신이 기도하지 않고 있는 것을 합리화시키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잘못된 겸손에 불과합니다. 기도하기 위해 우리가 어떤 신비스러운 방법을 배워야 할 필요는 없기 때문입니다, 만일 당신이 가까운 친구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면, 당신은 기도할 수 있습니다. 하느님은 우리의 가장 가까운 친구이시기 때문입니다. 친구에게 말하듯이 하느님과 대화해 보십시오.
기도하기 위하여 당신이 거룩한 사람이 될 때까지 기다릴 필요도 없습니다. 기도야말로 우리를 거룩하게 만드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기도를 위해 당신에게 해 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한 마디의 조언이 있다면 그것은 ‘시작하라!’는 것입니다. 당신이 기도하는 중에 하느님은 당신의 기도를 인도해 주시고, 당신의 기도를 성장시켜 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기쁨과 평화를 선물로 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기도가 당신에게 자연스럽고, 즐거운 일이 되도록 하여 주실 것입니다.
기도는 매우 단순하며 반드시 특정한 방법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방법이 도움이 되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방법이 도움보다 방해가 되기도 합니다. 방법은 사람마다 다를 수 있으며, 그 모든 방법들은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이라는 점을 잊지 마십시오. 기도는 무엇보다 사랑입니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사랑하는 대상을 그리워하고, 그와 함께 친밀함을 나누며, 마침내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만일 당신이 누군가와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을 원치 않는다면, 당신은 아직 그 사람을 사랑하지 않고 있다는 징표일 수 있습니다. 만일 당신이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고, 그를 더 깊이 알기 원치 않는다면 당신은 아직 그 사람을 사랑하지 않고 있는 것일 수 있습니다. 사랑을 위한 기술과 방법은 없습니다. 우리는 사랑을 통해 그것을 터득할 수 있을 뿐입니다. 사랑은 우리의 심장과 가슴에서 시작되고, 심장과 가슴의 길을 따르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기도, 영혼을 하느님께 올려드리는 일
모든 기도를 말로 드릴 필요는 없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모든 소통을 말로 하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소통은 말에서 시작되고, 말을 넘어섭니다. 기도도 마찬가지인데 기도는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은 우리가 영혼과 마음 없이 말로 드리는 기도보다 말이 없을지라도 영혼과 마음으로 드리는 기도를 더욱 좋아하십니다.
사람들은 말없이 침묵으로 드리는 기도를 말로 드리는 구송기도와 구분하여 묵상기도 혹은 관상기도라고 합니다. 그러나 묵상기도와 관상기도의 대부분은 거룩한 단어나, 짧고 단순한 기도문으로 시작합니다. 그런 점에서 침묵 가운데서 하느님의 현존을 경험하는 기도는 거룩한 단어나 말로 드리는 기도의 씨앗이 자라나서 맺는 열매와 같습니다. 때문에 겸손하게 말로 시작하는 단순한 기도를 낮은 단계의 기도로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은 기도에 대한 예수님의 태도가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기도를 가르쳐 달라고 하였을 때, 말로 드리는 ‘주의 기도’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우리는 말로 드리는 기도를 통하여 자신의 말로 하느님과 친밀하고 자유롭게 대화할 수 있습니다. 친구나 부모에게는 자신을 숨길 수 있을지 모르지만 하느님께는 우리 자신을 숨길 수 없습니다. 아니 숨길 필요가 없습니다. “내 부모가 나를 버리는 한이 있을지라도 야훼께서는 나를 거두어주실 것”(시편 27:10)이라는 시편 기자의 고백처럼 하느님은 우리가 어떤 상태에 있을지라도 있는 그대로 우리를 받아주시고 사랑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전례나 모임에서 소리 내어 말로 드리는 모든 기도는 자발적이고 사랑어린 하느님과의 소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기도서의 많은 기도문들은 신앙의 모범이 된, 성인(聖人)들의 훌륭한 기도들의 모음이며, 하느님께서는 가장 좋은 것을 받으실만한 분이시기 때문에 우리는 마음을 다해 그 기도문을 읽으며 기도합니다. 우리가 기도서를 사용하여 기도할 때, 우리는 위대한 성인들의 깊은 영적 유산이 담긴 기도에 참여하는 것이며, 비록 그것이 다른 사람들의 기도문이지만 우리가 마음을 다해 그 기도를 바칠 때, 그 기도는 우리 자신의 기도가 될 수 있으며, 그 기도는 우리의 마음과 영혼에 아로새겨지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하느님은 지금 자신의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기도를, 자신의 마음과 영혼을 담아, 자신의 언어로 드리는 기도도 반가워하십니다. 하느님은 우리의 마음과 영혼을 사랑하시고, 우리의 기도는 바로 우리의 심장과 영혼에서 울려나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영혼과 심장이 비록 위대한 성인들의 것들과 비교하여 작고 초라할지라도 하느님은 우리의 영혼과 마음을 받고 싶어 하십니다. 그것이 우리가 하느님께 드릴 수 있는 모든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한 사람의 성인(聖人)이 되기 전까지 성인의 영혼과 심장을 하느님께 드릴 수는 없지만, 우리가 성인(聖人)이 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우리 영혼과 심장을 하느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기도 - 멈추어, 보고, 듣기
기도의 방법에 대해 이야기하기 전에 기도의 세 단계에 대하여 먼저 언급해야 하겠습니다. 기도는 무엇보다 멈추어, 보고, 듣는 것입니다.
기도하기 위해 무엇보다 당신에게 필요한 것은 멈추는 일입니다. 당신이 하고 있는 모든 것을 멈추어야 합니다. 지금 여기서 하느님께 기도드리는 일 외에 모두 멈추어야 합니다. 마리아처럼 멈추어 주님의 발치 아래 앉지 않으면, 하느님을 들을 수도 없고, 볼 수도 없습니다.(루가 10:38-41) 당신을 사랑하는 사람은 다른 무엇보다 당신이 그들과 함께 하는 시간을 원합니다. 함께 하는 시간은 당신을 사랑하는 사람이 자신이 당신의 사랑을 받고 있는지 아닌지를 알 수 있는 시험대입니다.
멈추는 것은 간단한 일처럼 보이지만 많은 일들과 약속으로 분주한 사람들에게는 결코 쉽지 않은 일입니다. 하지만 분주한 일상 속에서도 당신이 진정 기도하기를 원한다면 속도를 늦추는 법을 배워야만 합니다, 만일 당신에게 그것이 쉽지 않은 일로 다가온다면, 그것은 오직 당신에게만 어려운 일이라는 점을 기억하여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 자체는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니고, 멈춤이 필요한 일이라는 사실을 아직 당신이 인정하지 않고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당신이 하느님과 함께 하기 위해서라면 장미 꽃 향기를 맡는 일도 멈추어야 합니다.
둘째로, 기도는 바라보는 것입니다. 당신 영혼의 눈으로, 당신 마음의 눈으로, 당신 믿음의 눈으로 하느님을 바라보십시오. 우리의 시력으로는, 우리 이성의 눈으로는 하느님을 볼 수 없습니다. 그러나 믿음의 눈은 우리의 일상 속에서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베풀어 주시는 선물과 그 선물을 허락하신 하느님을 볼 수 있게 해 줍니다. 믿음은 하느님이 실재하시고, 현존하시는 분인 것을 압니다.
그런데 보는 것이 어려운 것은 그것이 매우 단순하기 때문입니다. 프랑스 아르스(Ars)의 요한 마리아 비안네 St. John Mary Vianey 신부는 매일 교회에 일찍 와서 혼자 기도를 드린 후에, 한동안 교회 의자에 앉아 있던 늙은 농부에게 ‘혼자 앉아서 무엇을 하였느냐?’고 물었습니다. 비안네 신부는 그 늙은 농부의 대답이 관상기도에 대한 완벽한 묘사라고 하였는데 그 늙은 농부의 대답은 이렇습니다. “나는 하느님을 바라봅니다. 그리고 하느님은 나를 바라보고 계십니다.” 단순한 마음으로 당신의 주의를 하느님께 돌리는 것, 그것이 전부입니다.
마지막은 듣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당신을 바라보고, 당신이 하느님을 바라보는 시간동안 당신은 하느님께 이야기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당신은 하느님께서 당신을 향해 하시는 말씀을 들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먼저 하느님을 바라보지 않고서, 하느님을 들을 수 없습니다.
당신이 누군가와 만나고 있다고 상상해 보십시오. 당신이 만나고 있는 상대보다 당신이 더 현명하다고 느낀다면 아마 당신은 상대보다 더 많은 말을 하고 싶어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당신이 만나고 있는 상대가 당신이 평소 존경하던 어떤 현인(賢人)이라고 상상해 보십시오. 아마도 당신은 당신이 많은 말을 하려 하기보다 그 현인으로부터 많은 말을 듣고 싶어 할 것이고, 그 현인으로 하여금 더 많은 이야기를 하도록 할 것입니다. 이같은 믿음은 우리로 하여금 기도 중에 듣는 것을 더욱 사모하게 만듭니다.
기도와 경청
최선의 경청은 마음을 듣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심장(Heart of God)을 듣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심장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우리는 그 마음을 하느님의 말씀인 성서를 통하여 듣고, 하느님께서 삶과 역사의 각 순간에 우리를 향하여 하시는 말씀을 통하여 듣기도 하며, 하느님께서 지으신 피조세계를 통하여 듣기도 합니다. 그런데 말씀과 삶/역사와 자연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하느님을 듣는 태도는 무엇보다 경청하는 습관을 통하여 발전합니다. 그것은 마치 오랜 만남과 대화를 통해 익숙해진 누군가의 음성을 우리가 쉽게 알아차리고, 들려오는 말과 소리를 넘어 그 사람의 마음까지도 들을 수 있게 되는 것과 같습니다. 양들은 목자의 음성을 듣습니다. 목자의 음성을 알고 있는 양들은 목자를 따라갈 수 있습니다.(요한 10:3-4)
그리스도인들은 하느님의 음성을 하느님의 말씀인 예수 그리스도와 성서를 통해서, 삶과 역사 속에서, 그리고 하느님께서 지으신 피조세계를 통해서 들어왔고, 지금도 듣고 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느님을 들을 수 있습니까? 그 음성은 청력이 아니라 우리 마음으로 들어야 합니다. 사랑으로 들어야 합니다. 사랑은 들을 수 있는 귀와 볼 수 있는 눈을 가지고 있습니다. 듣기를 원한다면, 듣기를 갈망하는 자리에 서서 하느님을 사랑하여야 합니다. 하느님께서 당신을 사랑하실 수 있도록 당신을 하느님께 맡기십시오. 하느님의 말씀을 듣는 것 외에 당신의 다른 목적을 위해 하느님을 이용하지 마십시오. 하느님은 당신의 구세주이시지 산타클로스가 아닙니다. 그러면 하느님은 당신이 하느님께 바라고 구하는 것 보다, 더 큰 선물로 당신에게 하느님 자신을 주실 것입니다. 하느님은 우리의 영혼을 당신의 무한한 풍요로움으로 채우시길 원하십니다. 기도는 하느님께서 당신 영혼 가운데로 오실 수 있도록 하느님을 향하여 우리 영혼을 열어 드리는 일입니다.
우리는 듣기 위해서 보아야만 합니다. 보기 위해서 멈추어야 합니다. 멈추기 위해서 먼저 하여야 할 것을 해야만 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일 할 수 있는 세상을 주셨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기도할 수 있도록 멈추고, 쉴 수 있는 안식도 주셨습니다. 지금 이 글을 읽는 것을 잠시 멈추고, 잠시 일 분 동안만 기도하여 보십시오. 만일 당신이 그것을 할 수 없다면, 당신은 늘 무언가 하여야 한다는 심각한 강박이나 일중독 상태에 있는 것 일수 있습니다. 만일 지금 당신이 잠시 멈추고 일 분 동안 기도할 수 있음에도 하지 않는다면, 당신은 노예 상태에 있는 것입니다. 당신이 지금 무엇을 하고 있든지 하고 있는 일보다 하느님을 사랑하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하느님 사랑에 대한 책을 읽고 있는 중일지라도, 사랑에 대한 글을 읽는 것과 사랑하는 것은 다른 일이라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지금 멈추십시오. 그리고 기도하십시오.
- 김홍일 (기도하는 삶)
기도와 지향
그렇다면 기도하는 사람이 행하여야 할 첫 번째 일은 우리를 에워싸고 계신 하느님을 기억하고, 그 하느님을 향하여 주의를 기울이며, 그 하느님에게 이끌리기를 갈망하는 것입니다. 프랑수아 드 살레 St. Franciscus de Sales는 “기도하려는 사람은 자신이 어떤 분의 임재 안에 들어가야 하는지를 기억하고 기도를 시작해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기도를 시작하기 전에 무릎을 꿇거나, 두 손을 모으거나 혹은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라고 성호경(聖號經)을 외우며 기도를 시작합니다. 그것은 우리 기도의 지향을 분명히 하기 위함이며, 우리가 누군가를 만나기 전에 마음을 가다듬고 준비하듯 하느님 임재 안에 들어가기 위하여 마음을 준비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리스도교 기도에서 중요한 것은 방법이 아니라 ‘지향’입니다. ‘어떻게’가 아니라 ‘누구를 향하’여 기도하는가? 그것이 그리스도교적인 기도인가 아닌가를 구분하는 기준이 됩니다. 우리는 앉아서 기도할 수 있고, 서서 기도할 수도 있으며, 걸으면서 기도할 수 있고, 보면서 기도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또한 말로 기도할 수 있고, 침묵으로 기도할 수 있으며, 동작과 행동으로도 기도할 수 있습니다. 세상의 그 무엇도 끊어낼 수 없는 하느님과의 관계 안에 머무는 모든 것이 기도이기 때문입니다.
기도할 때 우리가 행하여야 할 두 번째 일은 하느님의 임재 안에 머물고자 하는 갈망과 함께 하느님 앞에서 우리의 마음을 정직하게 기꺼이 열어드리려는 의향입니다. 기도는 하느님 안에서 자신의 삶과 계획과 관계들을 정직하게 돌아보는 겸손과 하느님의 뜻에 기꺼이 승복하려는 순종적 의지로 하느님 앞에 나아가는 것입니다. 만일 기도하는 사람에게 이같은 태도가 결여되어 있다면, 말로만 드리거나, 습관적으로 드리는 대부분의 기도들이 그러하듯 그런 기도는 기계적이고 상투적이며 변화와 열매가 없는 기도에 그치고 말 것입니다.
다양한 기도의 방법이 있지만 우리들이 가장 쉽고 많이 경험하며, 자주 드리는 기도는 말로 드리는 구송(口誦)기도입니다. 사람들은 흔히 구송기도와 묵상 혹은 관상기도를 구분하여 말하지만 실재로 많은 사람들은 구송기도를 반복하다가 이따금 말을 멈추고 하느님 안에 머물면서 하느님을 향한 자신의 헌신이 새로워지는 것을 경험합니다. 마음을 다하여 구송기도를 실천하는 많은 사람들은 방법을 알지 못하지만 성령에 이끌려 관상기도의 높은 상태로 이끌리는 경험을 하기도 합니다. 아빌라의 데레사 St.Teresa of Avila는 소리 내어 천천히 주기도문으로 기도하는 중에도 순순한 관상을 경험할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예배 중에 우리가 드리는 기도문들을 마음을 다하여 천천히 읽어 보십시오. 순간, 순간 어느 구절, 어느 문장에서 하느님의 임재를 강하게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이처럼 기도할 때, 구송기도는 매우 내적인 기도가 되며, 아울러 마음(Heart)으로 드리는 기도가 될 수 있습니다.
구송기도는 또한 우리의 기도를 묵상으로 안내해 주는 다리 역할을 하기도 하고, 침묵기도 중에 산만해진 마음을 다시 하느님께 향할 수 있도록 도와주거나, 제대로 하느님께 주의를 집중할 수 있게 될 때까지 마음을 모으도록 하는데 큰 도움을 주기도 합니다. 우리는 성경말씀을 소리 내어 읽다가 마음에 울림을 주는 구절이나 단어에 멈추어, 하느님 임재 안에서 그 말씀과 함께 고요히 머물 수도 있고, 짧은 기도문을 반복하며 단순기도를 드리는 중에, 더 이상 기도문을 반복하고 싶지 않은 순간, 멈추고 하느님 안에 머물러 쉴 수도 있습니다.
기도는 사랑이다.
기도는 생각하는 것보다 쉽습니다. 어떤 사람은 자신에게는 기도가 너무 거룩하고, 어려운 일처럼 느껴진다고 말합니다. 그들은 때로 그같은 이유로 자신이 기도하지 않고 있는 것을 합리화시키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잘못된 겸손에 불과합니다. 기도하기 위해 우리가 어떤 신비스러운 방법을 배워야 할 필요는 없기 때문입니다, 만일 당신이 가까운 친구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면, 당신은 기도할 수 있습니다. 하느님은 우리의 가장 가까운 친구이시기 때문입니다. 친구에게 말하듯이 하느님과 대화해 보십시오.
기도하기 위하여 당신이 거룩한 사람이 될 때까지 기다릴 필요도 없습니다. 기도야말로 우리를 거룩하게 만드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기도를 위해 당신에게 해 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한 마디의 조언이 있다면 그것은 ‘시작하라!’는 것입니다. 당신이 기도하는 중에 하느님은 당신의 기도를 인도해 주시고, 당신의 기도를 성장시켜 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기쁨과 평화를 선물로 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기도가 당신에게 자연스럽고, 즐거운 일이 되도록 하여 주실 것입니다.
기도는 매우 단순하며 반드시 특정한 방법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방법이 도움이 되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방법이 도움보다 방해가 되기도 합니다. 방법은 사람마다 다를 수 있으며, 그 모든 방법들은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이라는 점을 잊지 마십시오. 기도는 무엇보다 사랑입니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사랑하는 대상을 그리워하고, 그와 함께 친밀함을 나누며, 마침내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만일 당신이 누군가와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을 원치 않는다면, 당신은 아직 그 사람을 사랑하지 않고 있다는 징표일 수 있습니다. 만일 당신이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고, 그를 더 깊이 알기 원치 않는다면 당신은 아직 그 사람을 사랑하지 않고 있는 것일 수 있습니다. 사랑을 위한 기술과 방법은 없습니다. 우리는 사랑을 통해 그것을 터득할 수 있을 뿐입니다. 사랑은 우리의 심장과 가슴에서 시작되고, 심장과 가슴의 길을 따르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기도, 영혼을 하느님께 올려드리는 일
모든 기도를 말로 드릴 필요는 없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모든 소통을 말로 하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소통은 말에서 시작되고, 말을 넘어섭니다. 기도도 마찬가지인데 기도는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은 우리가 영혼과 마음 없이 말로 드리는 기도보다 말이 없을지라도 영혼과 마음으로 드리는 기도를 더욱 좋아하십니다.
사람들은 말없이 침묵으로 드리는 기도를 말로 드리는 구송기도와 구분하여 묵상기도 혹은 관상기도라고 합니다. 그러나 묵상기도와 관상기도의 대부분은 거룩한 단어나, 짧고 단순한 기도문으로 시작합니다. 그런 점에서 침묵 가운데서 하느님의 현존을 경험하는 기도는 거룩한 단어나 말로 드리는 기도의 씨앗이 자라나서 맺는 열매와 같습니다. 때문에 겸손하게 말로 시작하는 단순한 기도를 낮은 단계의 기도로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은 기도에 대한 예수님의 태도가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기도를 가르쳐 달라고 하였을 때, 말로 드리는 ‘주의 기도’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우리는 말로 드리는 기도를 통하여 자신의 말로 하느님과 친밀하고 자유롭게 대화할 수 있습니다. 친구나 부모에게는 자신을 숨길 수 있을지 모르지만 하느님께는 우리 자신을 숨길 수 없습니다. 아니 숨길 필요가 없습니다. “내 부모가 나를 버리는 한이 있을지라도 야훼께서는 나를 거두어주실 것”(시편 27:10)이라는 시편 기자의 고백처럼 하느님은 우리가 어떤 상태에 있을지라도 있는 그대로 우리를 받아주시고 사랑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전례나 모임에서 소리 내어 말로 드리는 모든 기도는 자발적이고 사랑어린 하느님과의 소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기도서의 많은 기도문들은 신앙의 모범이 된, 성인(聖人)들의 훌륭한 기도들의 모음이며, 하느님께서는 가장 좋은 것을 받으실만한 분이시기 때문에 우리는 마음을 다해 그 기도문을 읽으며 기도합니다. 우리가 기도서를 사용하여 기도할 때, 우리는 위대한 성인들의 깊은 영적 유산이 담긴 기도에 참여하는 것이며, 비록 그것이 다른 사람들의 기도문이지만 우리가 마음을 다해 그 기도를 바칠 때, 그 기도는 우리 자신의 기도가 될 수 있으며, 그 기도는 우리의 마음과 영혼에 아로새겨지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하느님은 지금 자신의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기도를, 자신의 마음과 영혼을 담아, 자신의 언어로 드리는 기도도 반가워하십니다. 하느님은 우리의 마음과 영혼을 사랑하시고, 우리의 기도는 바로 우리의 심장과 영혼에서 울려나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영혼과 심장이 비록 위대한 성인들의 것들과 비교하여 작고 초라할지라도 하느님은 우리의 영혼과 마음을 받고 싶어 하십니다. 그것이 우리가 하느님께 드릴 수 있는 모든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한 사람의 성인(聖人)이 되기 전까지 성인의 영혼과 심장을 하느님께 드릴 수는 없지만, 우리가 성인(聖人)이 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우리 영혼과 심장을 하느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기도 - 멈추어, 보고, 듣기
기도의 방법에 대해 이야기하기 전에 기도의 세 단계에 대하여 먼저 언급해야 하겠습니다. 기도는 무엇보다 멈추어, 보고, 듣는 것입니다.
기도하기 위해 무엇보다 당신에게 필요한 것은 멈추는 일입니다. 당신이 하고 있는 모든 것을 멈추어야 합니다. 지금 여기서 하느님께 기도드리는 일 외에 모두 멈추어야 합니다. 마리아처럼 멈추어 주님의 발치 아래 앉지 않으면, 하느님을 들을 수도 없고, 볼 수도 없습니다.(루가 10:38-41) 당신을 사랑하는 사람은 다른 무엇보다 당신이 그들과 함께 하는 시간을 원합니다. 함께 하는 시간은 당신을 사랑하는 사람이 자신이 당신의 사랑을 받고 있는지 아닌지를 알 수 있는 시험대입니다.
멈추는 것은 간단한 일처럼 보이지만 많은 일들과 약속으로 분주한 사람들에게는 결코 쉽지 않은 일입니다. 하지만 분주한 일상 속에서도 당신이 진정 기도하기를 원한다면 속도를 늦추는 법을 배워야만 합니다, 만일 당신에게 그것이 쉽지 않은 일로 다가온다면, 그것은 오직 당신에게만 어려운 일이라는 점을 기억하여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 자체는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니고, 멈춤이 필요한 일이라는 사실을 아직 당신이 인정하지 않고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당신이 하느님과 함께 하기 위해서라면 장미 꽃 향기를 맡는 일도 멈추어야 합니다.
둘째로, 기도는 바라보는 것입니다. 당신 영혼의 눈으로, 당신 마음의 눈으로, 당신 믿음의 눈으로 하느님을 바라보십시오. 우리의 시력으로는, 우리 이성의 눈으로는 하느님을 볼 수 없습니다. 그러나 믿음의 눈은 우리의 일상 속에서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베풀어 주시는 선물과 그 선물을 허락하신 하느님을 볼 수 있게 해 줍니다. 믿음은 하느님이 실재하시고, 현존하시는 분인 것을 압니다.
그런데 보는 것이 어려운 것은 그것이 매우 단순하기 때문입니다. 프랑스 아르스(Ars)의 요한 마리아 비안네 St. John Mary Vianey 신부는 매일 교회에 일찍 와서 혼자 기도를 드린 후에, 한동안 교회 의자에 앉아 있던 늙은 농부에게 ‘혼자 앉아서 무엇을 하였느냐?’고 물었습니다. 비안네 신부는 그 늙은 농부의 대답이 관상기도에 대한 완벽한 묘사라고 하였는데 그 늙은 농부의 대답은 이렇습니다. “나는 하느님을 바라봅니다. 그리고 하느님은 나를 바라보고 계십니다.” 단순한 마음으로 당신의 주의를 하느님께 돌리는 것, 그것이 전부입니다.
마지막은 듣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당신을 바라보고, 당신이 하느님을 바라보는 시간동안 당신은 하느님께 이야기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당신은 하느님께서 당신을 향해 하시는 말씀을 들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먼저 하느님을 바라보지 않고서, 하느님을 들을 수 없습니다.
당신이 누군가와 만나고 있다고 상상해 보십시오. 당신이 만나고 있는 상대보다 당신이 더 현명하다고 느낀다면 아마 당신은 상대보다 더 많은 말을 하고 싶어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당신이 만나고 있는 상대가 당신이 평소 존경하던 어떤 현인(賢人)이라고 상상해 보십시오. 아마도 당신은 당신이 많은 말을 하려 하기보다 그 현인으로부터 많은 말을 듣고 싶어 할 것이고, 그 현인으로 하여금 더 많은 이야기를 하도록 할 것입니다. 이같은 믿음은 우리로 하여금 기도 중에 듣는 것을 더욱 사모하게 만듭니다.
기도와 경청
최선의 경청은 마음을 듣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심장(Heart of God)을 듣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심장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우리는 그 마음을 하느님의 말씀인 성서를 통하여 듣고, 하느님께서 삶과 역사의 각 순간에 우리를 향하여 하시는 말씀을 통하여 듣기도 하며, 하느님께서 지으신 피조세계를 통하여 듣기도 합니다. 그런데 말씀과 삶/역사와 자연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하느님을 듣는 태도는 무엇보다 경청하는 습관을 통하여 발전합니다. 그것은 마치 오랜 만남과 대화를 통해 익숙해진 누군가의 음성을 우리가 쉽게 알아차리고, 들려오는 말과 소리를 넘어 그 사람의 마음까지도 들을 수 있게 되는 것과 같습니다. 양들은 목자의 음성을 듣습니다. 목자의 음성을 알고 있는 양들은 목자를 따라갈 수 있습니다.(요한 10:3-4)
그리스도인들은 하느님의 음성을 하느님의 말씀인 예수 그리스도와 성서를 통해서, 삶과 역사 속에서, 그리고 하느님께서 지으신 피조세계를 통해서 들어왔고, 지금도 듣고 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느님을 들을 수 있습니까? 그 음성은 청력이 아니라 우리 마음으로 들어야 합니다. 사랑으로 들어야 합니다. 사랑은 들을 수 있는 귀와 볼 수 있는 눈을 가지고 있습니다. 듣기를 원한다면, 듣기를 갈망하는 자리에 서서 하느님을 사랑하여야 합니다. 하느님께서 당신을 사랑하실 수 있도록 당신을 하느님께 맡기십시오. 하느님의 말씀을 듣는 것 외에 당신의 다른 목적을 위해 하느님을 이용하지 마십시오. 하느님은 당신의 구세주이시지 산타클로스가 아닙니다. 그러면 하느님은 당신이 하느님께 바라고 구하는 것 보다, 더 큰 선물로 당신에게 하느님 자신을 주실 것입니다. 하느님은 우리의 영혼을 당신의 무한한 풍요로움으로 채우시길 원하십니다. 기도는 하느님께서 당신 영혼 가운데로 오실 수 있도록 하느님을 향하여 우리 영혼을 열어 드리는 일입니다.
우리는 듣기 위해서 보아야만 합니다. 보기 위해서 멈추어야 합니다. 멈추기 위해서 먼저 하여야 할 것을 해야만 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일 할 수 있는 세상을 주셨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기도할 수 있도록 멈추고, 쉴 수 있는 안식도 주셨습니다. 지금 이 글을 읽는 것을 잠시 멈추고, 잠시 일 분 동안만 기도하여 보십시오. 만일 당신이 그것을 할 수 없다면, 당신은 늘 무언가 하여야 한다는 심각한 강박이나 일중독 상태에 있는 것 일수 있습니다. 만일 지금 당신이 잠시 멈추고 일 분 동안 기도할 수 있음에도 하지 않는다면, 당신은 노예 상태에 있는 것입니다. 당신이 지금 무엇을 하고 있든지 하고 있는 일보다 하느님을 사랑하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하느님 사랑에 대한 책을 읽고 있는 중일지라도, 사랑에 대한 글을 읽는 것과 사랑하는 것은 다른 일이라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지금 멈추십시오. 그리고 기도하십시오.
- 김홍일 (기도하는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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